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겨울밤, 세트로 만든 실내는 바깥보다 더 춥다. 얇은 교복 차림으로 카메라 앞과 모니터를 오가는 배우 봉태규, 김태현, 노형욱은 모니터 옆의 온풍기에 잠깐씩 몸을 녹이는 것이 고작이다. 용산 옛 수도여고에서 진행 중인 <방과후 옥상> 촬영현장. 90% 이상이 학교 배경인 <방과후 옥상>은 수도여고에서 촬영되는 마지막 한국영화가 될 것이다. 여기가 12월31일로 직업학교로 리모델링되기 때문이다. 높은 천장의 대강당에는 두동의 세트가 세워졌다. 정신병원 연구실 장면 촬영을 마친 한쪽 세트는 현재는 현장모니터가 놓인 감독의 보금자리로 바뀌었다. 이날 촬영은 꾀병으로 조퇴하려는 남궁달(봉태규)에게 흥수(노형욱)가 빨간 사인펜으로 눈에 점을 찍어주는 39신에서 시작됐다. 1평도 안되는 곳에 부감으로 세 인물을 잡고 있는 카메라는 사인펜과 불과 20cm여 떨어져 있다. 게다가 액션 구호가 떨어지면 몸을 가누기도 힘든 비좁은 공간에서 카메라는 미세하게 위를 향해 움직인다.
단편 <순간접착제>를 만든 이석준 감독은 “비슷한 공간을 다르게 보여주기 위해 판타지를 많이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왕따와 불운으로 점철된 학교생활 끝에 정신병원까지 다닌 남궁달은 공문고등학교에 전학했다. 비슷한 처지인 연성(김태형)은 남궁달에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라고 부추기고 남궁달은 여학생 미나를 괴롭히는 한 남학생에게 호통친다.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학교짱 재구다. 봉태규는 “학교생활이랑 비슷한 규칙적인 스케줄이라 더 타이트하다”고 전했다. 자정이 다가오고 촬영분량은 전부 소화됐다. 추위에 떨던 봉태규와 김태형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과거에 못 찍은 봉태규의 단독장면 네컷을 더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봉태규는 초코바를 한입 베어물고는 담담히 세트쪽을 향한다. 추위에 떨며 기다렸던 보조연기자들과 함께한 화장실 장면은 새벽 2시쯤 마무리됐다. 총 33회차 <방과후 옥상>은 내년 3월에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