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는 솔직하다. 권상우를 만나본 기자들은 그를 ‘가장 시원하게 얘기하는 배우’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권상우 앞에서는 부러 예의 바른 인사성 멘트를 읊지 않아도 된다. 올 한해, 유독 구설에 많이 오른 그를 만나면서 ‘말조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작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야수>의 권상우가 이전과 달라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천국의 계단>이나 휴대폰 CF에서처럼 매끈하니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동갑내기 과외하기> 때처럼 치기어린 소년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성장한 모습의, 아주 아주 어두운 버전처럼 보였다. 악과 싸우기 위해 자신 안에 더 큰 악을 키워야 하는 외로운 남자처럼…. 쿨함보다 처절함이 어울리는….
<야수>는 특수효과가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날것의 액션으로 가득한 영화다. <야수>에서 권상우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성깔있는 강력반 형사 장도영을 연기한다. 거대한 음모의 실체로 다가가면서 장도영은 자기 안의 야수적 본능에 몸을 내던진다. 장도영을 위해 권상우는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멋있거나 정의로운 형사가 아니라, 악몽처럼 달라붙은 복수심을 끌어안고 지옥으로 치닫는 형사를 연기하기 위해서다. 장도영을 연기하면서 권상우는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영화처럼 한번에 성공하고 잘 풀리고… 그런 일은 실제로는 벌어지지 않는다. 장도영은 주인공답지 않게 매사가 잘 안 풀리는 인물이다. 그런 면이 내게 와닿았다. 관객도 그런 장도영에게 공감을 느꼈으면 한다.”
장도영만이 아니라 권상우도 올 한해 유독 머리 복잡한 일을 많이 겪었다. 자신이 한 말 때문에 구설에 오르거나 이른바 ‘연예인 X파일’로 불쾌한 일을 겪었고, 결혼설로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에게 한류 스타가 된 소감을 물으니 그는 “<씨네21> 보니까 내가 과대평가된 배우 2위로 뽑혔더라”(<씨네21> 527호,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참조)며 웃는다. “할리우드에서는 러셀 크로 같은 ‘배드 보이’ 이미지, 조지 클루니 같은 ‘플레이보이’ 이미지에 대중이 거부감보다 매력을 느낀다. 데뷔 초반에는 나도 그런 컨셉으로 밀어볼까 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말조심하고 얌전하게 살기에는 억울한 일도 있었다. “X파일 사건 때는 너무 억울했다. 톱스타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도 아니고, (웃음) 술 따르고 춤췄다는 얘기를 들으니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영화계나 관객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박해일이나 조승우에게는 ‘연기파’라고 하지만 조인성이나 강동원의 성공은 ‘스타 파워’로 치부한다. 나는 꽃미남도 아니라(웃음)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늦어도 35살에는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어떤 삶을 살아도 결국 같아진다고 생각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배우로서 열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내 생활을 찾고 싶다. 지금은 작은 실수를 해도 과대포장되고…. 인간으로 안 보고 돈으로 보니까 인간관계도 괴로울 때가 있고.” 하지만 그의 욕심대로라면 그 전에 배우 권상우를 잊을 수 없게 하는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가 잘 나와서 기자 시사 끝나고 불 켜졌을 때, 그때가 가장 짜릿”하다는 것을, 권상우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