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검은 9월, 그 뒤…, <뮌헨>
2006-01-05
글 : 문석

1972년 9월에 열린 뮌헨올림픽의 주인공은 수영에 출전해 7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마크 스피츠가 될 수도 있었다. 또는 체조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낸 양갈래 머리의 러시아 소녀 올가 코르부트였거나. 하지만, 그해 9월5일 이 올림픽 전체를 잊고 싶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스스로를 ‘검은 구월단’이라 부르는 팔레스타인 극단주의 단체가 올림픽 선수촌을 급습해 이스라엘 국가대표 선수 2명을 죽이고 선수 9명을 인질로 붙잡은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투옥 중인 200여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석방하라는 요구조건을 내건 이들은 서독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이집트로 가려고 했지만, 비행기가 대기 중이던 공군기지에서 서독 경찰에 의해 5명이 사살되고 3명이 생포된다. 그리고 인질 9명은 모두 사망했다. ‘검은 구월단 사태’는 TV 앞에서 생중계를 지켜보던 전세계 9억명의 시청자에게 현대적인 테러의 실체를 처음 보여줬고, 폭력의 신세계가 도래했음을 일깨워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뮌헨>은 이 사건에 분노한 일군의 유대인들이 “평화는 잊어라. 그들에게 우리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이스라엘 정부의 지지 속에서 전세계를 돌며 11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추적하고 잔인하게 제거하는 과정을 담는 영화다. 출연배우 중 상당수가 시나리오 전체를 받지 못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을 정도로 비밀스럽게 촬영된 탓에 이 영화는 여러 루머를 낳아왔다. “유대인인 스필버그를 고려할 때 친이스라엘 성향의 영화가 분명하다”는 소문은, 그러나 12월23일 이 영화의 미국 개봉이 가까워지면서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보다는 끝없이 순환되는 폭력의 고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리더인 이스라엘 정보장교 애브너(에릭 바나)를 비롯해, 전 모사드 대원 에프라임(제프리 러시), 남아프리카 출신의 터프가이 스티브(대니얼 크레이그), 독일계 유대인 한스(한스 지쉴러), 벨기에 출신 폭발물 전문가 로베르(마티외 카소비츠)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영화는 이들 내면에서 흐르는 폭력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스필버그의 어떤 작품보다 무겁고 진지한 영화가 될 <뮌헨>은 내년 아카데미의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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