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변신을 잘 하는 배우들이 부럽고, 아무리 스타여도 한 이미지로 10년 넘게 먹고 사는 사람들 짜증나요. 개인적으로 연기든 뭐든 똑같은 일 반복하는 거 싫증 잘 내기도 하구요.”
지난 여름 하느님의 착하고 순한 양이었다가(<신부수업>), 계절이 두번 바뀌는 동안 야수로 돌변해(<야수>) 나타난 권상우(31)의 첫 마디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신부’가 되기 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변화에 대한 욕구가 엿보인다. 똑같이 교복을 입었어도 <화산고>(2001)와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와 <말죽거리 잔혹사>(2004) 속 그의 모습은 각기 달랐다. 변주의 횟수에 비례해 영화와 하모니를 이루는 수준도 높아졌다.
<야수>에서 권상우는 물불 가리지 않고 일단 덤비고 보는 형사 장도영 역을 맡았다. 폭력 조직 도방파를 와해하는 데 모든 것을 건 검사 오진우(유지태)와 함께 정·재계 거물이 된 도방파 보스 유강진(손병호)에 맞서는 인물이다.
공공연하게 “<화산고> 때는 장혁을, <일단 뛰어> 때는 송승헌을 이기고 싶었다”던 권상우다. 그래서 이번에도 ‘유지태와의 연기대결’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제 만 서른을 막 넘긴, 데뷔 6년차 배우 권상우가 <야수>에서 택한 길은 경쟁이 아닌 조화였다. 그는 “<야수> 시나리오를 봤을 때, (튀지 않고) 묻어가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며 “유지태와 경쟁하는 대신 서로 응원해주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김성수 감독(<무사>의 감독과 동명이인)이나 다른 스태프들과의 호흡도 잘 맞았다. “현장에서 저도 모르는 순발력 같은 게 생겨요. 감독님이 그걸 포착해서 그때 그때 잘 잡아주셨고, 그래서 결과도 만족스럽게 나왔어요. 촬영하면서 100%를 다 쏟아냈다는 쾌감도 느꼈구요.”
그래서인지 12일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일 영화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했다. “영화 주인공들은 혼자 끝까지 살아남고, 쉽게 상대를 제어해요. 하지만 <야수>의 장도영은 그렇지 않아요. 작은 행복을 원하면서 열심히 살아도 그게 쉽지 않아요. 그 모습이 우리들의 현실과 더 닮지 않았나요? 끝까지 가는 남자 얘기라는 것도 맘에 들구요.”
언론 시사회 뒤 ‘끝까지 가는’ 결말에 대한 엇갈린 반응과 아직 좀 남아 있는 그의 ‘혀짧은 발음’에 대한 안 좋은 평가들도 있었지만 권상우는 이에 대해서도 스스로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할 만큼 단호했다. “2시간 동안 어떻게 모든 얘기를 다 담을 수 있나요? 영화에 대해 좀 더 제대로 된 관심들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혀짧은 발음이요? 정말 듣기 싫으면 영화 안 보시면 되잖아요. 노력도 안 하고 이런 말 하면 버릇 없는 놈이지만, 저 노력 많이 해요. 처음부터 누가 심은하, 이병헌을 연기파 배우라고 그랬어요? 노력하고 많이 하다보면 느는 거죠. 한 작품에서 보여준 부족한 연기가 징이 박히는(각인되는) 경향이 있는데, 좋은 작품에서 더 나아진 연기를 좀 봐주세요.”
스스로를 “상업 영화 배우”라고 얘기하는 권상우는 앞으로도 “적정한 수준의 흥행이 보장되면서도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재밌게 끝까지 가는 남자 영화를 더 해보고 싶고, 능력은 아직 안 되지만 정통 멜로도 하고 싶다”는 그의 다음 작품은 김하늘과 함께 출연하는 <청춘만화>(이한 감독). 권상우는 뚜껑머리 액션 배우 지망생 역을 맡았다. 메트로섹슈얼한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게 ‘얻어터지는 형사’에 이어 ‘뚜껑머리 액션 배우’는 너무 아쉬운 선택아니냐고 농반진반을 던지자, “재밌잖아요”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