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하면 흔히 픽사의 <토이 스토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CG 기술은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여타 셀 애니메이션에도 쓰여 왔으며, 그러한 노하우가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사이토 다카오 원작을 데자키 오사무 감독이 영상화화한 재패니메이션 <고르고13>(1983)은 그 시초에 해당하는 작품으로서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CG를 도입한 첫 실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은 전통의 셀 방식으로 제작되었지만 오프닝 곡이 나오는 부분과 마지막 최종 결전에서의 하이라이트, 두 군데 장면은 풀 CG가 쓰였다. 허나 20년도 더 지난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조악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위 사진 속의 장면은 무적의 킬러 고르고13을 제거하기 위해 파견된 전투 헬기 코브라 편대가 뉴욕의 빌딩 숲을 지나는 부분. 헬기와 빌딩이라는 물체의 구분만이 느껴질 뿐, 그것을 실감나게 하는 질감이라든지 빛의 표현은 전무하다시피하다. 게다가 움직임마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당시가 CG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최첨단 기술로 여겨졌던 시기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 <고르고13>의 CG 파트를 담당한 회사 ‘토요링크스’는 병렬처리 컴퓨터 그래픽 시스템을 개발하고 레이트레이싱 렌더링 기법 등 최신 기술을 실용화 시켜 일본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곳. 늘 실험적인 영상을 추구해온 데자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제작에 참여했지만, 장면 구현을 위한 응용 프로그램도 전무한 상황에서 필요한 도구를 스스로 개발해가며 작업에 임했다. 하나의 3D 오브젝트를 만드는 과정은 우선 모눈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파악한 수치들을 일일이 키보드로 쳐서 입력하는 수작업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실력파 애니메이터들이 그려낸 아날로그 영상과의 이질감 때문에 좋은 결과물로 남지는 못했지만 실험작으로서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는 충분히 평가할만한 것이다. 특히 그들이 훗날 OVA 작품 <마크로스 플러스>, 게임 <귀무자> 오프닝 영상, <바이오 해저드 리버스>의 CG 등을 담당해 찬사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