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섯 개의 시선>의 <고마운 사람> 연출한 장진 감독
2006-01-1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이혜정

장진 감독은 아침부터 시작한 이사가 채 끝나지 않은 듯한 K&J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삿짐을 푸는 사람답게 들뜨고 활기있어 보였지만, 그 생기가 이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진 감독이 제작과 공동각본을 맡은 <웰컴 투 동막골>은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연출한 <박수칠 때 떠나라>도 관객 300만명을 넘기며 선전했다. 스스로 ‘호남 누아르’라고 정의한 신작 <거룩한 계보>도 벌써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다. 요즘 “일에 미쳐 있다”는 장진 감독. 1월13일에 개봉하는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 개의 시선> 중에서 <고마운 사람>에 관한 기억을 청하고자 그를 만났지만, 대화는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뿌듯했던 지난해와 촘촘히 들어찬 금년 계획에까지 이르렀다.

-<웰컴 투 동막골>이 대한민국 영화대상 작품상을 탔다. 수상무대에서 이 영화를 친북·반미 영화로 몰아갔던 사람들에게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는데.
=이 영화를 오독했던 분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녀사냥도 아니고. 황우석 교수나 친일 사태를 봐도 과거의 무언가가 부활한 것 같다. 전엔 누군가 구호를 외치면 마음이 움직여 같이 외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구호를 외칠 만한 게 없어서 그런지, 싸울 만한 일도 아닌데 몰아가는 분위기다. 올해 특히 그런 일이 많았다. <그때 그사람들> 재판을 보면서도 화가 났다.

-인권영화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내가 단편을 좋아하는데, 이건 단편영화고, 7천만원이기는 하지만 제작비도 준다니까(웃음). 내가 연극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예술적인 성취도보다 시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92, 93년 즈음에 적이 없어진 거다. 그 무렵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연극을 하는지 이유가 사라졌고, 가열차게 투쟁하던 사람들은 넥타이 매고 주류사회에 편입했다. 제대하고 나와서도 우루과이라운드나 광주 민중항쟁을 다룬 민중극을 하기는 했지만, 이게 획득력이 없는 거야. 그래서 더 코미디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모두 내 연극을 보고 행복해지면 그게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거지 싶었다.

-범위가 매우 거대하다고는 해도 인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한계가 부담스럽진 않았는가.
=나는 적이 존재했던 과거에도, 지금도,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섯 가지 주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환경과 인권, 아동, 여성, 언론이 그것이다. 그래서 환경영화 <소나기는 그쳤나요?>도 했던 거다. <다섯 개의 시선>을 보면서 좋았던 건 참여한 감독들이 자기 색을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정지우 감독의 <배낭을 멘 소년>이 좋았던 것도 원래 그의 색깔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탈북자 소녀가 소년에게 “남한 아이들보다 오토바이 천천히 타십시오. 고향엔 가야지”라고 말하는 대사가 좋았다. 우리가 그들을 타자로 보는 한 이 땅은 그들에게 결코 따뜻한 곳이 아니구나 깨닫게 됐다.

-<고마운 사람>은 시국사범으로 끌려온 대학생과 비정규직 고문기술자가 주인공이다. 당신이 이런 소재를 택한 건 뜻밖이었는데.
=덜컥 생각이 났다. 아직 남산쪽만 봐도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직접 겪지 않은 내가 이런 영화를 찍어도 좋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가는 시대에 발맞추기보다 한발 혹은 반발자국이라도 앞서야 한다고 믿는다. 군사정권이 끝나고 10년이 넘었는데 이젠 제대로 화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그들 중에도 패트리엇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거기에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고문하는 사람과 고문받는 사람이 마음을 터놓게 되는 이야기지만 코미디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소재를 코미디로 만드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는가.
=대중영화감독이 <다섯 개의 시선> 같은 목적영화를 한다면 대중적인 성격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이런 작업을 해온 감독이 더 낫지 않겠는가. 내가 해온 건 아이러니와 코미디였고, 그걸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다. 비정규직 노동을 다룬다고 해서 르포나 다큐를 찍어야 하는건 아니지 않을까. 노동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생겼는데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분명 참담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다, 심지어 고문기술자 중에도 있다, 정도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제작자가 되었다. 기분이 어땠나.
=쪽팔리지(웃음). 박광현 감독이 상을 받고 <웰컴 투 동막골>이 좋은 결과를 얻은 게 내겐 최고의 상이었고, 내 눈대중이 맞아떨어졌다는 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런데 글쓰고 영화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올해의 제작자라니까 “자 봐, 이제 네가 갈 길이 보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웃음) 내가 연출한 <박수칠 때 떠나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연극을 할 때와는 다르게 영화를 하면 쉽게 포기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팀을 보면서 끈기와 근성을 배웠고, 그래서 일에 미쳐 있다는 거다. 빨리 시나리오 만지고 싶고, 영화 찍고 싶고. 올해 안에 작살낼 시나리오도 벌써 두개나 써두었다.

-신작 <거룩한 계보>는 어떤 이야기인가.
=아직은 두 남자의 캐릭터가 두드러지고 디테일은 매만지지 못한 초고 상태다. 어느 깡패가 감옥에 갔는데 조직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가 감옥에 있는 사이 부모가 살해돼 조직이 복수를 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자기도 감옥에서 칼에 찔린 거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나가서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그 깡패가 탈옥을 하고, 자기가 깡패가 아니라 회사원이라고 믿고 있는, 어릴 적부터 함께 싸우며 자라온 친구를 만나게 된다. 감옥에서 그를 따르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이 ‘거룩한 계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주인공은 탈출한 깡패지만 어쩌면 밖에 있던 그 친구가 더 인상에 남을지도 모른다.

-<박수칠 때 떠나라>도 그렇고 장르영화에 끌리고 있는 듯하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건 규격화된 장르 안에 내 영화가 들어가는 거다. <아는 여자>도 그랬다. 누구나 생각하는 로맨틱코미디 안에서 다른 영화를 만드는 거지. <거룩한 계보>는 내 다른 영화들처럼 코미디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코미디라고 말할 순 없는 영화가 될 거다.

-강우석 감독과 제작사 K&J 엔터테인먼트를 차렸고 <웰컴 투 동막골>을 제작한 필름있수다도 유지하고 있다.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가.
=내가 연출하는 영화는 웬만하면 밖에서 하고 싶다. <아는 여자>를 필름있수다가 제작했는데 감독하면서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으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내 영화는 누군가 핸들링해주었으면 한다. 예산관리와 정확한 프로듀싱 같은 것들을 맡아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K&J는 상업영화로 제작되기는 힘든 영화들도 제작할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비주얼 슈퍼바이저였던 김중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거인>이라는 시나리오로 각색했는데, 이건 작가주의 영화가 되겠지만, 예산이 20억 정도 되어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나나 강우석 감독이나 그런 프로젝트에 힘이 될 만한 위치가 되었으니 K&J로 가져오려고 한다. 필름있수다는 그사이 역량이 높아지고 제작능력도 생겨서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세팅할 만한 회사가 됐다.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바르게 살자>도 올해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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