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홀리데이>는 어떤 영화 [1]
2006-01-2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18년 전 서울 한쪽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이 세월의 무게를 떨치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탈주와 인질극 끝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지강헌 일파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홀리데이>다. 그동안 이 소재를 둘러싸고 몇몇 영화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준비를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월을 건너온 실화는 과연 어떻게 영화가 되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서 알아보는 사건의 경위와 당시 언론의 반응, 영화 제작 기간 중에 드러난 새로운 사실들, 그리고 실제와 허구가 뒤섞여 탄생한 영화의 전모에 대해서 살펴본다.

1. 비지스의 노래, 스콜피온스로 바뀌다 - 실화 지강헌 사건

“탈주범 가정집서 인질 대치극 2명 자살 1명 사살 1명 검거”(동아일보 10월17일자 1면)
“탈주극 끝내 유혈로 마감”(경향신문 10월17일자 1면)
“탈주 사건 관계 장관 인책 불가피”(한국일보 10월18일자 1면)

1988년 10월16일 오후 서울 북가좌동에서 벌어진 유혈극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고, 전직 대통령 동생의 수백억대 횡령 및 탈세로 온 나라의 서민이 치를 떨고 있던 때였다. 이른바 지강헌 사건은 그때 벌어졌다. 이감 호송 중 12명의 죄수가 탈주, 그중 지강헌을 비롯한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 등 4명은 서울 잠입 후 은신에 성공해 권총 한정과 총알 다섯발을 소지하여 마지막까지 버텼다. 8박9일 동안 195시간에 걸쳐 다섯 집의 식구를 인질로 삼아 거처를 옮겨 다녔으며, 그래서 ‘인질숙박’이라는 말이 그해 유행어처럼 세간에 떠돌았을 지경이었고, 마지막에 이르러 경찰과 대치하여 벌인 16시간의 인질극 끝에 안광술, 한의철은 자살, 강영일은 자수(또는 검거당)했고, 몇 시간 뒤 지강헌은 인질 고선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리조각으로 목을 그어 자해했으며, 그와 동시에 투입된 특공대의 총에 맞아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시55분경 사망하였다.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듣고 싶다고 요구하여 테이프를 건네받은 지강헌, 그가 목을 긋고 총을 맞을 당시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였다고 한다. 1988년, 어느 일요일, 대한민국 ‘휴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국일보 보도사진집>

당시 언론의 주요 관심은 치안유지에 허술함을 보인 경찰에 대한 질책과 탈주를 부추긴 동기로 지목된 교도행정의 문제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강헌 일당에 대한 행적이 가십처럼 덧붙여지면서 미온적인 호평과 호기심어린 관심이 동반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예를 들어, 그들은 탈주 도중 은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원정강도를 했지만, 때로는 강탈한 돈을 돌려주기도 했고(“임씨 집에 침입한 직후 임씨 가족을 1층 방 안에 몰아넣은 뒤 집 안을 뒤져 금품을 챙겼던 탈주범들 중 주범 지강헌씨는 임씨 가족에게 감화된 듯 ‘없어진 게 있느냐’고 묻고는 임씨가 ‘내 돈 15만원과 딸의 돈 20만원이 없어졌다’는 대답을 하자 공범들로부터 훔친 돈을 돌려받아 건네주기도 했다는 것”―<동아일보> 10월17일자 14면), 인명을 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때때로 정중하게 존댓말을 썼으며, 모두가 초등학교 최종 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로 변장(강영일)하고 다닐 정도로 영리한 탈주 행적을 벌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우두머리 격인 지강헌은 사회에 대한 시사적 발언을 자주 일삼았고(“도피 기간 중 연희궁에 못 간 게 철천지 한이 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는 파헤치고 죽겠다”―<경향신문> 17일자 14면), 게다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의 어투가 대단히 시적이었다는 것(“2차례씩이나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경력이 있는 문학도로 알려진 지강헌은 경력에 걸맞게 자신을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시인’이라고 주장. 여느 탈주범들과 달리 시종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자신의 심경을 밝힌 지강헌은 자신을 ‘생각의 씨앗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보도진에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었던 낭만적인 염세주의자’로 써줄 것을 유언식으로 당부하기도”―<경향신문> 17일자 14면) 등이 보도되면서 이 사건은 한마디 머릿기사로 간추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의문들을 남긴 것이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장 거세게 주장한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돈이 있으면 죄가 아니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된다)”였다. 그 말은 이들의 탈주에 대한 동기이자 분노였고, 구호였으며, 은연중에 그들이 자기들의 시대에 내린 정의였다. 그들의 행적은 이미 영화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할 만큼 영화적이었던 것이다.

2. 인질들이 석방탄원서를 내다 -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2년 반 전쯤 시작했다. 한 여성지에 실린 고선숙씨(지강헌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인질)의 수기 기사 복사본을 보고 자료조사에 착수했다. 32명쯤 만났고, 자료조사만 6개월 정도 걸렸다. 그러면서 당시 언론이 발표한 것과 실제 일어난 사건이 많은 부분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홀리데이> 제작사 현진씨네마 이순열 대표)”

‘지강헌 사건’은 오랫동안 충무로의 아이템으로 떠돌았다. 그러나 선뜻 누군가 먼저 실행하진 못했다. 그러다 2004년 6월경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뚜껑을 열고 보니 하나가 아니라 네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준비 중이었다. 현진시네마의 <홀리데이>, 다인픽처스의 <무전유죄>, 씨네터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리고 김영빈 감독의 <휴일>이었다. 당시로서는 어느 쪽이 먼저 들어갈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종적으로 영화를 가장 먼저 만들게 된 현진시네마쪽은 서로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다인픽처스 관계자를 만난 적도 있지만, “특별한 조율은 되지 않았고, 자기 식대로 가자”는 결론을 내린 후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제작을 위해서는 자료조사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홀리데이>의 기획자이자 제작자인 이순열 대표는 관련자들을 만나며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가령, 그의 말을 종합하면 “인질극이 벌어졌던 북가좌동 집은 그후 흉가가 되어 마지못해 정부가 사줬고, 마지막 인질 중 한명이었던 고선숙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리고 네 번째 집의 임씨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판결을 받아 3천만원을 받았다”. 그러니까 인질 중 일부는 이 땅이 싫어 떠났거나, 그중 일부는 범죄자가 아닌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한 셈이다. 오히려 “인질로 잡혔던 다섯집의 사람 중 세 사람이 서울지검장 앞으로, 살아남은 강영일을 위해 탄원서를 냈다(그는 내년 6월이 만기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두고 흉악범, 강간범, 폭력범 등으로 몰았는데, 사실 그 사람들 모두 단순절도잡범이었고, 하다못해 무술 유단자도 없었다. 밥 먹고 나서 설거지까지 하고 간 사람들이다. 그 당시 악용되던 보호감호법의 피해자였을 뿐이다”. 탄원서의 의미를 이 대표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장면 구성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 새로운 증언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인질극을 벌인 지강헌의 최후에 대한 영화적 묘사가 그렇다. “당시 특공대가 투입됐을 때 몰래 같이 들어간 모 신문사 기자가 있었다. 죽기 전에 지강헌하고 통화도 한 사람이다. 그때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아니라,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가 흘러나왔다는 것도 이 사람에게서 들었다”. 이를테면 영화 <홀리데이>에서 홀로 남은 강혁(지강헌의 극중 이름)은 인질인 효주에게 마지막 부탁이라며 무언가를 청한다. 그런 후 비지스의 곡 홀리데이가 LP 레코드를 통해 흘러나온다. 얼마 뒤 강혁은 자해를 감행하고, 강혁 일당을 쫓던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이 쓰러져 있는 강혁 앞에 들어선다. (만약 모 기자의 그 증언이 사실이라면) 실제 인물 지강헌이 그토록 원하던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지 못하고 죽은 것에 비해, 영화의 주인공 지강혁은 그걸 듣고야 만다. 영화는 여기서 실제와 허구를 적절히 나누어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홀리데이>는 실제에 기초하여 당시 사회상 중 일부를 부각시키거나, 허구적 요소를 추가하는데, 그중에서도 몇 가지는 영화의 주요 포인트로 배치되어 있다. 그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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