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의 <나사못 회전>이 현대 공포 소설과 영화에 끼친 영향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이후에 서구권에서 나온 ‘귀신들린 집’ 소설이나 영화들은 모두 제임스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몇몇 작품들은 변주나 다름없다. 마르첼로 알리프란디의 <어둠 속의 속삭임>,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디 아더스>, 김지운의 <장화, 홍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떻게 <나사못 회전>을 무시할 수 있을까?
<나사못 회전>은 끊임없이 영화화되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중 몇 편은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버전이다) 아직도 가장 잘 만들어진 <나사못 회전> 영화는 잭 클레이튼의 <이노센츠 The Innocents>이다.
내용은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새로 저택에 부임한 가정교사는 얼마 전에 죽은 하인과 가정교사의 유령이 그녀가 맡고 있는 두 아이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다. 가정교사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사악한 유령들로부터 보호하려 하지만 과연 그 유령들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아까 잭 클레이튼의 영화가 가장 잘 만들어진 <나사못 회전> 영화라고 했는데, 그건 이 영화가 가장 충실한 각색이라는 뜻은 아니다. 원작이 중요하게 다루었던 성적인 억압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배우인 데보라 카를 가정교사 역에 기용하면서 어느 정도 사라진다. 대신 카 캐릭터의 지나친 상상력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데, 그건 이야기와는 잘 맞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손쉬운 해결책인 것 같다. 영화는 헨리 제임스가 내세운 모호한 주제를 썩 잘 살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종종 지나치게 명쾌해 보인다.
그러나 상관없다. 영화는 여전히 아름답고 원작의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카의 엄격함이 살아나자 ‘종교적 광신이 멀쩡한 사람들을 파괴한다’는 새로운 주제가 힘을 얻기도 한다.
EBS에서 <공포의 대저택>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방영한 이 영화를 DVD로 다시 봐야 하는 이유는? 화면 비율 때문이다. 이 DVD는 와이드스크린 버전과 팬앤스캔 버전을 모두 수록하고 있는데, 절대로 와이드스크린 버전을 선택할 일이다. <이노센츠>는 60년대 영화들이 많이들 그런 것처럼 주저하지 않고 화면을 꽉 채운 와이드스크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난다면 다음 화면들을 비교해 보라. 어떻게 양심을 다치지 않고 저런 풀 스크린 버전을 방영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는가?
오리지널 화면 비율을 제공한 걸 제외한다면 나머지 부록은 시원치 않다. 예고편 몇 개와 비슷한 부류의 영화 몇 편의 자료가 제공되는 것이 전부. 상당히 지명도 높은 작품인데도 왜 이 작품이 정정당당하게 폭스사의 스튜디오 클래식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어른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호러’와 노골적인 센세이셔널리즘을 멋대로 뒤섞은 예고편엔 유치한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