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 특집] MEC 뉴스데스크 - 명절의 애환
2006-01-27
글 : 김나형
일러스트레이션 : 헌즈

누군가 시집장가 가지 않는 다음에야, 명절이 없다면 친척이 한자리에 모일 일도 별 없는 세상이다. 명절은 그래서 흥겹고 그래서 두렵다. 재수생과 백수, 노처녀·노총각들에게 쏟아지는 몰매너한 질문들. 주부들에게 지워지는 고강도의 노동. 친척들 사이에 팽팽히 당겨진 역학관계의 끈. 인내심을 증진시키는 교통체증과 명절이 오히려 서러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설 특집 뉴스데스크의 형식을 빌려 멋대로 꾸며보았다. 혹시 또 아나? 이 기사가 배려하고 조심하는 설, 뻔뻔해지고 당당해지는 설에 조금이라도 기여할지.

설 맞은 이태백의 애환

빰빰빠암~ 빠밧밧빰~ 빠바바 바바바밤~ 빰빰빰빰~ 빰빠~ 빠암~~!

앵커1: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설 특집, MEC 뉴스, 난다김입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서울 가리봉동에 사는 강모씨가, 설은 다가오고 취직은 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한 끝에, 지난밤 자신의 옥탑방에서 라면 두개와 소주 다섯병을 먹고 그만, … 얼굴이 팅팅 부었다고 합니다.

앵커1, 2: (서로 인사하며) 네에~.

앵커2: 다음 소식입니다. 과다한 양의 나트륨을 섭취하면 다음날 아침 얼굴이 붓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서치앤리서치사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명절날 친척들의 곤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이 방법을 응용한다고 하는데요, 김신영 기자?

기자: 네, MEC 뉴스 김신영입니다. 즐거운 명절이지만 모두에게 명절이 기쁜 것은 아닙니다. 청년 실업자들은, 수많은 친척들의 입에서 쏟아질 질문 공세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이태백: (음성변조) 끄게요, 쩡말 힘들어요. 쩌두 이러려고 이러고 있는 궈 아니거든요? 저도요! 쩡말 번듯하게 한번 살고 쉬펐어요. 그런데요, 친척분들이요, “사촌 ○○는 ○○전자에 취직했다던데, 너는 어쩌려고 그러니” 하는 질문을 몇번씩 하시면요, 있던 의욕도 없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라면을 복용했어요. 얼굴이 부으면 정말 아픈 것처럼 보이거든요. 말만 잘하면 큰댁에 안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트레인스포팅>

기자: 청춘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고민하는 것은 비단 한국의 일만이 아닙니다. <트레인 스포팅>에 출연했던 영국 청년의 말을 들어보시죠.

마크 렌턴: 취직? 그런 거 뭣 하러 하려 그래? 실업수당 나오는데. 감시국에서 나왔을 때만 까이 꺼 뭐, 대에~ 충 그냥, 둘러대면 돼. 진짜 열심히 취직 시험 봤는데 떨어진 것처럼, 대에~ 충, 성실한 척하다가 면접관 앞에서 갑자기 토해주면, 뭐, 대에! 충. 어, 그리고, 어, 한국에 그거 있잖여, 고오스톱. 까이꺼, 뭐, 백수생활 하면서 연마한 실력으로 거, 대에충, 명절날 고스톱 한판으로 꼰대들 주머니 다 쓸어버려~!

이태백: (흥분하여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며) 실업수당? 거기는 그런 것도 주냐? 어댜! 거가 어디얏?!

기자: 세, 세계 어디 건 청춘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에든버러에서, 김신영입니다.

도피성 해외여행 증가추세

앵커1: 설 연휴를 맞아 묻지마 해외 여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이정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일요일이 연휴 첫날을 대뜸 삼켜버린 사상 최악의 설 연휴, 이런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여행사들은, 몇주 전부터 폭주하는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여행사 직원: 항공권이 없어서 못 팔아요.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 여성분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기자: 이렇게 설을 맞아 해외여행이 증가하는 데는, 웃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다.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한 여성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김브릿지: 아유, 시집 안 가겠다는 것뿐인데, 아니 솔직한 말로 제가 시집 못 갈 사람처럼 보이냐구요? <브릿지 좐스의 일기>도 냈는데 말이지. 그만하면 성공했죠. 여하튼 집에서 명절 보내는 거 이젠 증말 못 참겠어. 아저씨들 득실거리고, 애들은 빽빽 울지, “예전에는 동네에서 제일 귀엽더니, 너도 많이 늙었다”는 둥, “살은 왜 이렇게 쪘냐”는 둥, “혼자 살면 돈 쓸 일도 없을 건데 집에 돈 좀 안 보태냐”는 둥…. 어디 구석에서 밥이라도 먹고 있을라치면, “누가 데려갈지, 밥 하나는 잘 먹는구나” 이러니, 복장이 안 터지냐구요. 차라리 어디 여행가는 게 낫지. 티켓 못 구하면, 휴일 근무 있다고 둘러대고 회사 나와서 컴퓨터 게임이나 할 생각이었거든요. 가정 있는 상사들, 휴일에 대신 나와주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아하는데. 근데 기자 어빠, 헤어 스톼일 귀엽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얼룩말 팬티도 준비했는데. 우~.

기자: (머리를 뒤로 휙 넘기며) MEC 뉴스, 이정돕니다.

누가 명절을 원하나

앵커2: 다음 소식입니다. 설을 앞둔 한 가장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명절이 부담스러운 가장의 마음, 손주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어이쿠야 명절이네/ 짐 싸면서 투덜대는/ 당신보면 괴롭구나/ 화투치고 술마셔도/ 좌불안석 당신 곁에/ 시엄마와 얘기해도/ 야단맞나 속이 철렁/ 시누하고 마주 봐도/ 싸움났나 속이 덜컹….”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화제가 되고 있는, ‘남편 명절 일기’의 한 부분입니다.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내를 바라보는 가장의 심경을 그렸습니다.

남자: 아무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연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집사람 안색이 변하니까.

기자: 곤란한 남편의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가장 괴로운 것은 주부들입니다.

여자: 정말 이러다 우울증이 걸리는구나 싶어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잖아요.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으면서 전 부치고 있는데 대뜸 와서 “어, 맛있겠다” 이러면서 날름 주워 먹는 거 한두번 보나요. 동서들은 또 어떻구요. 느지막이 나타나선 “형편 어려워서 아무것도 못 사와서… 죄송해요”로 시작해서 하소연에 하소연을 늘어놓죠. 뭐 거기까지 다 좋은데, 갈 때 딱 빈통 꺼내놓잖아요. “형님 음식 솜씨가 너무 좋으시니까. 남편도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이러면서…. 얄미워 죽겠어요. 남은 어깨결림, 좌골신경통 예사로 달고 사는데…. 우리는 친정 안 보내도 딸들한테는 전화해서 어서 오라고 하시는 시어머니도 어쩜 그러시나요. 명절 때 친정 못 간 게 벌써 몇년 됐어요. 눈치 보여서 갈 수가 있어야죠.

기자: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의 이란영화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소녀, 기혼 여성, 할머니가 겪는 세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습니다. 명절이 두렵기만한 한국 주부들의 상황은 이란 여성들의 그것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명절이 즐겁다지만, 주부들 마음은 천근만근입니다. MEC 뉴스, 손주렴입니다.

미국도 교통체증 심각

앵커1: 첫 번째 해외 소식입니다. 3년 전 미국에서, 에어컨이 고장난 차를 타고 가다 심각한 교통 체증에 갇혀 있던 40대 미국 남성이, “집으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차를 방치한 채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할리우드 뉴스는, 빌이라는 이름의 이 남성이, 그 길로, 생일을 맞은 딸을 만나러 가던 중, 야구 방망이, 주머니 칼, 총기를 사용, 여러 건의 기물 파손과 상해, 한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는데요, 미 경찰쪽은, 빌이 이혼 뒤 부인, 딸과의 유대 단절에 괴로워했으며 한달 전 회사에서도 해고되었다고 밝히면서, 일상생활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허감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 행위로 연결된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파일명 <폴링다운>이라는 극비 문서에 기재된 이 사건은, 빌이 한국인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3년 동안 한국에서 보도되지 못했던 것으로, MEC 뉴스가 어제 ‘처음으로’(무심을 가장한 강조, 교묘한 억양) 보도한 바 있습니다. 사건 보도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KoreaNo1’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한국인을 우습게 알았던 것은 큰 실수”라며 “미국인들도 일년에도 두번씩 도로에서 23시간을 보내는 귀성길 수양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한국이라는 말만 나오면 흥분하는 한국인들이 더 무섭다”는 글에 ‘황우석쵝오’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한국 싫으면 북한 가서 살아라”는 댓글을 다는 등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본

<아무도 모른다>

앵커2: 이번에는 일본 소식입니다. 다섯명의 아이들이 도쿄 변두리 공동주택에서, 부모가 없는 채 일년이 넘도록 살았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도 내 인생 살 테니 너희들도 너희 인생 살거라”는 지론을 가진 어머니가, 아버지가 각기 다른 다섯명의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되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유기되어 스스로 살아왔던 것을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일본 곤니치와 신문은, 장남 아키라는 돈이 떨어지자 어머니의 전남편들을 한명씩 찾아가 약간의 돈을 받아오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팔고 남은 삼각김밥을 얻어 동생들을 보살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건을 전해 들은 일본인들은 “やっぱりそうですね。”(얏바리 소데스네: 역시 그랬군)라고 중얼거리며, 자녀들에게 “너희들도 할 수 있겠지?” 하는 그윽한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다섯 남매의 이야기가 일본 전역으로 퍼지고 가운데, 스고이네 출판사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우리, 아무도 몰랐다> 출간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출판사 관계자는 아키라가 편의점 알바의 도움을 받아 봉투에 동생들 이름을 써 새뱃돈을 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이 소설이 출간되면 이번 설에 ‘줄기세배-돈 쓰나미 광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상, 설 특집 MEC 뉴스를 마칩니다. 시청자 여러분, 모쪼록 무사한 설 연휴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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