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설연휴 극장가, 애인이랑 볼까 친구랑 볼까
2006-01-27
글 : 임인택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지난 설 극장가의 화젯거리는 누가 뭐래도 <말아톤>이었다. 올 설도 어린이 관객까지 너끈히 사로잡을 가족 영화들로 푸짐하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선택의 폭은 훨씬 넓다. 연인 따로, 심지어 외톨이 따로 골라 볼 영화들도 많다.

<사랑을 놓치다>
<무극>

연인들아, 내년 설도 그대 둘 함께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 하지만 한해 두해 넘겨 마침내 제 아이들 데리고 가족 영화를 보게 될 지도. <사랑을 놓치다>(추창민 감독·27일 개봉)의 우재(설경구)와 연수(송윤아)가 그럴 것 같다. 다른 곳만 훑던 우재, 한 곳만 바라봤지만 도통 고백하지 못하는 연수. 이들의 어긋남이 10여년을 되풀이하다보니 스치기만 했던 기간도 인연이 되고 마침내 연인이 된다. 일상으로 겪는 사랑의 속앓이가 설경구, 송윤아의 낮은 목소리에 더 낮게 밴다. 무엇보다 이들 사랑엔 환상이 많지 않아 좋다.

그에 견줘, <무극>(천카이거)은 시대도, 배경도 특정할 수 없는 신화적 사랑을 장대하게 펼쳐낸다. 절대미를 가졌으나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을 선택한 칭청(장바이즈)과 그를 사랑하는 두 남자, 쿤둔(장동건)과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 저마다 운명, 신분, 욕망으로 불안정한 이들은 현대인의 표상. <패왕별희>의 천카이거가 대놓고 아시아 시장을 노리며 만든 대작. 피터 챈(진가신) 감독의 <퍼햅스 러브>도 아시아 감성에 호소하는, 게다가 아시아 영화로는 드문 뮤지컬 멜로물이다. 성공을 위해 지난 사랑을 부정하는 손나(주신)를 맴도는 지엔(금성무)과 니웬(장학우)의 슬픈 노래를 듣게 된다.

<투사부일체>
<왕의 남자>

방바닥 긁다보면 뚫어지지 않을까
극장으로 가자. 외로운 이들 위무하겠단 영화들, 한둘이 아니지만 잘 골라봐야겠다. 웃기겠다고 아예 선전포고한 <투사부일체>(김동원). 대학 졸업을 앞둔 계두식(정준호)은 두목(김상중)의 명령에 따라 고교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되고, 이 곳에서 부하들 몰래 졸업장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두목을 만나는 게 뼈대. 하지만 계두식과 ‘왕따 피해학생’이 된 두목이 엮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가 실소를 자아내는 정도다. 계두식이 부패사학에 맞서고 사학 비리의 피해자인 여학생에게 연정을 느낀다는 등 기본적인 설정이 1편과 흡사해 식상하다.

<작업의 정석>(오기환), <싸움의 기술>(신한솔)도 코믹과 드라마가 적절히 배합되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손예진과 백윤식의 연기가 일품이다. 단 영화 속 작업 기술, 싸움 기술 따라하면 더 오랫동안 외톨이 될 공산 크다는 공통점이 있겠다. 이성재의 매력이 돋보이는 <홀리데이>(양윤호), 컴퓨터 그래픽 최초의 남우주연상을 노릴 법한 <킹콩>(피터 잭슨), 관습적 결말을 보기 좋게 깨뜨린 정통 느와르 <야수>(김성수)도 설 극장 식단에 올라있다. 사극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이끌며, 당장 700만명 고지를 내다보는 <왕의 남자>(이준익)도 ‘방콕’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치킨 리틀>
<투 브라더스>

그래 아무렴 설은 어린이 세상이다
월트 디즈니가 100%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첫 장편 애니메이션 <치킨 리틀>(마크 딘달)이 먼저 줄은 섰다. 캐릭터들을 찌그러뜨리고 늘리는 최첨단 애니메이션 기법인 ‘스쿼시 앤드 스트레치’가 쓰였지만 디즈니적인 옛 느낌은 여전하다. 하늘 조각이 떨어진 것을 목격한 치킨 리틀이 왕따 친구들인 런트(돼지), 애비 말라드(청둥오리), 피쉬(물고기)와 함께 외계인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아버지의 믿음을 되찾는다는 내용. 스토리 구성은 단조롭지만 깜찍하고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귀여운 유머들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반면 <투브라더스>(장 자크 아노)는 인공미가 거의 없다.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유도하기 위해 환경을 꾸며준 뒤, 호랑이가 실제 느끼고 움직일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며 찍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헤어진 호랑이 형제의 기구한 운명을 인간의 것보다 더 없이 아름답고 포근하게 그렸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쉽게 감화될 수작이다. <열두명의 웬수들×2>(아담 쉥크만)도 온 가족이 함께 웃기에 무난한 코미디 영화. 톰 베이커(스티브 마틴)와 케이트 베이커(보니 헌트) 부부는 장성한 자식을 출가시키기에 앞서 12명의 자식들과 함께 마지막 휴가를 떠난다. 이곳에서 톰은 필생의 라이벌 지미 머타(유진 레비)를 만나고, 톰과 지미는 각각 12명, 8명의 자식들을 동원해 기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두 집안의 자식들은 아버지들의 경쟁에 반기를 들며 성장해 나가고, 그 틈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로맨스도 싹튼다. 결말은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폴라 익스프레스>(로버트 제멕키스) 아이맥스판은 아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한 소년이 산타의 마을로 가는 북극행 고속열차를 탄 뒤 겪는 모험은 어른들이 봐도 황홀하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감동은 유효하다. <나니아 연대기>(앤드류 아담스)도 꼬마 관객을 기다린다.

특별한 예술영화에 빠지고 싶다면…

<더 차일드>
<메종 드 히미코>

이번 설에도 상업영화관의 북적대는 매표구 앞을 피해서 특별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위한 예술영화 메뉴판이 빈곤하지 않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만, 아버지답기는 어렵다’는 격언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리얼리즘 영화다. 음악, 카메라 워크 등을 일체 가미하지 않은 채 보이는 것 그대로 관객이 판단하게끔 하는 다르덴식 수법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말하자면 영화는 애오라지 관객의 것이다. 미성숙한 부뤼노(제레미 레니에)가 아이를 갖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다팔고 흥정하는 부뤼노. 거짓말은 일상이다. 결국 여자친구 소니아(데보라 프랑소아) 몰래 아이도 내다파는 그가 사랑과 존재의 가치를 확인해갈 때까지 영화는 진득하니 응시하고, 담박하게 담는다. 심심한 그 풍경 속, 과장없는 브뤼노의 현실 때문에 관객은 느닷없이 웃거나 때론 눈을 감게 된다.

<메종 드 히미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열혈팬들이 기다려온 이누도 잇신 감독의 새영화다. 전작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담백하게 그렸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소통을 역시 은근한 온기와 유머로 엮어나간다. ‘메종 드 히미코’, 즉 ‘히미코의 집’은 은퇴한 게이 바 마담인 히미코가 자신과 같은 ‘퇴역 게이’들을 위해 만든 일종의 실버홈이다. 병 든 히미코의 집에 오래 전 헤어졌던 히미코의 딸 사오리가 나타난다.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오리는 히미코와 동성애자들을 혐오했지만 이곳 노인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서서히 ‘다른’ 욕망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27일부터 하이퍼텍나다에서 번갈아 상영하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과 <스테이션 에이전트>는 선댄스 영화제의 최근 화제작들이다. 지난해 미국 독립영화계가 낳은 ‘수퍼스타’인 미란다 줄라이가 감독과 주연을 한 <미 앤 유…>는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가는 이야기로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에 살던 꼬마부터 장년까지의 인물들이 우연히, 혹은 자신의 열망에 의해 조심스럽게 소통의 문을 열어가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시적인 소품이다.

<스테이션 에이전트>는 소통보다 적극적인 ‘우정’을 정감있게 이야기한다. 기차 모형 제조 기술자인 난장이 핀은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가 남긴 유산으로 시골 동네의 역을 물려받는다. 이곳으로 옮겨 온 그에게는 여전히 호기심과 놀림의 시선이 가득하지만 그중 몇몇의 호기심은 우정으로 발전한다. 핀과 실없는 핫도그 장사 청년, 섬세하지만 정신없는 중년의 여성 셋이 나란히 시골 기차길을 걸어가는 풍경이 인상적이며 가족들이 함께 즐기기에도 손색없는 따뜻하고 풍요로운 영화다.

그 밖에 필름포럼에서는 한 남자의 질투와 독점욕이 낳는 사랑의 파국을 서정적으로 그린 샹탈 애커만 감독의 <갇힌 여인>을 상영하며 김동원, 장진, 류승완, 정지우, 박경희 감독이 연출한 옴니버스 인권영화 <다섯개의 시선>도 씨네큐브와 씨지브이 인디영화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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