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부드러운 듯 거칠고 거친 듯 부드럽다, <뮌헨>의 에릭 바나
2006-02-01
글 : 이종도

에릭 바나는 니콜 키드먼, 휴 잭맨, 러셀 크로에 이어 호주가 선물한 대형배우다. 그러나 선물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할리우드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은 <블랙 호크 다운>(2001)에서 주트 중사 역이다. “식당에선 조종간을 안전으로 하라”는 장교의 명령에 검지손가락을 까딱이며 “내 검지손가락이 안전 스위치”라고 대꾸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거칠고 반항적이면서도 가슴에 진한 전우애를 품고 있는 주트 중사 역이었다. 가슴은 전우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 정도로 뜨겁지만, 얼굴은 그걸 쉽게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하던 일 마저 정리하러 간다는 듯한 시큰둥한 얼굴이다. 리안 감독은 그 얼굴에서 마블 코믹스 <헐크>의 주인공을 보았다. 브래드 피트는 호주영화 <차퍼>(2000)에서 괴물 같으면서도 우아한 위력의 남자 에릭 바나에게서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귀족적인 얼굴을 보았다.

189㎝의 헌칠한 키에 깊고 따뜻한 눈매, 지적인 얼굴, 믿음을 주는 목소리로 그는 <헐크>와 <트로이>의 주연급을 연달아 꿰찼다. 상처받은 영웅 <헐크>에서 헐크의 인간적인 내면을 보여주었던 그는 <트로이>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진중한 매력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브래드 피트의 거칠 것 없는 오만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런 보물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놓칠 리 없다. 에릭 바나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스필버그의 문제작 <뮌헨>을 추가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암살단의 유대인 우두머리 아브너 역이다. 물론 그는 유대인과는 거리가 먼 크로아티아와 독일 혈통(그래서 원래 이름은 에릭 바나디노비치다)이다. 아브너는 처음에는 순진한 민족주의자로 출발하지만 의심과 불안, 편집증과 싸우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에 회의를 품게 되는 복잡한 캐릭터다. 아브너는 독일 적군파로 위장하면서도 관객에게 자신이 이스라엘 요원으로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려야 하는 이중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에릭 바나가 맡은 아브너처럼 바나 자신도 이중적으로 보인다. 사색적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코미디언 출신이며, 자전거와 자동차 경주광이지만 총은 싫어한다. 그러나 결국 그를 스타로 만든 건 총을 들거나 창을 든 진중한 캐릭터들이다. 어쨌든 진지한 드라마 배우로 들어선 지금 그는 코미디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코미디도 좋지만, 내게 코미디는 초콜릿과 같다. 초콜릿을 손에 들고 있을 때는 신나지만 먹고 난 뒤 10분만 지나면 먹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지 않나. 반대로 좋은 드라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만찬과 같다.” 아무튼 궁금하다.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고, 호텔 바에서 술잔을 나르면서 틈틈이 코미디 무대에 서던 20대 시절에 이런 성공을 예감이나 했을지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성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음식이 가득 차려진 만찬’보다 그가 더 좋아하는 것은 집과 가족이다. 1년에 한편 촬영,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그게 이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고,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사내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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