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문막에 자리한 적막한 유원지 한쪽에 <구타유발자들>이 있다. 지난 1월13일에 있었던 현장공개 당시 자욱한 안개로 인해 리허설만 진행된 탓에 다시 찾은 현장.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어깨에 걸친 봉연(이문식)이다. “뭐해 새끼들아, 준비, 땅!” 그리고 이어지는 애국가. 사람좋은 미소를 감쪽같이 지운 이문식이 물가에서 발을 씻으면서 불러젖히는 단조로운 선율이 1절에서 4절까지 이어진다. “야, 이거 무슨 장송곡 같은데. (국가모독죄로) 문제되는 거 아냐?” 테이크를 마친 뒤 원신연 감독이 스탭들을 돌아보며 묻는다. 애국가를 구슬프게 부르는 게 대수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봉연의 열창을 배경음악 삼아 상상 이상의 폭력이 이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자장가> <빵과 우유> 등의 단편을 연출했던 원신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구타유발자들>의 시나리오는 2004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 대상작.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엽기폭력 상황으로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제자 인정(차예련)에게 흑심을 품고 인적 드문 곳으로 찾아든 음대 교수 영선(이병준)은 변두리 토박이 양아치들을 만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은 이들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봉연의 애국가가 이어지는 동안 봉연 일당이 왕따시키고 있는 고등학생 현재(김시후)와 위선덩어리 영선의 개싸움이 진행된다. 악에 받친 현재는 이를 악물고 영선에게 달려들고, 그 사이 봉연의 하수인 홍배(정경호)와 원룡(신현탁)은 인정을 벤츠 안에 몰아넣고 겁탈하려 한다. 여기에 차 안을 엿보려고 기를 쓰는 오근(오달수)까지 더해진 상황은 광기어린 폭력의 굿판이다.
몇달째 같은 장소에서 오로지 태양광에 의지한 채 쉴새없이 두 대의 카메라를 돌려온 제작진은, 유난히 까다로운 액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번엔 세대의 카메라를 동원했다. 세대의 모니터를 분주하게 체크하는 원신연 감독은 이 영화를 “블랙 유머러스 서스펜스 변두리 토박이 스릴러”라고 ‘간단히’ 소개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이한 상황이 이어지며 끊임없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갈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오는 3월경 그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