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갑작스런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반대해 영화계가 집행위원만 80명이 넘는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영화인들의 릴레이 농성 이틀째인 2월2일, 서울 중구 남산동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투쟁선포’ 기자회견에는 안성기, 정지영, 이춘연, 신우철 등 대책위 신임 공동위원장 4인 외에도 심재명, 오기민, 이현승, 류승완, 김대승, 정윤철, 민규동 등 50여명 가까운 영화인들이 자리했다.
대책위 공동 집행위원장에 뽑힌 정진영은 “비상시국이니만큼 (과거 대책위 보다) 확대된 형태”라고 탈바꿈한 조직을 소개하고, “영화인들이 집단 이기주의자들로 매도되는 현 상황을 극복하고 문화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릴레이 농성을 진행하면서 2월7일 오후 2시 영화인 총회와 2월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여는 것으로 초기 대응을 일단 마무리 할 계획이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해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국민중연대 등 국내 사회단체들이 일제히 비판 성명서를 발표한 가운데 해외 NGO 등에서도 한국정부에 항의문을 보내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위스 문화다양성연대 등은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 재정경제부 등 관련 부처 장관에게 “한국에서 현재 국제적 수준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으며 50% 이상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확보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유감”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프랑스 문화다양성 연대 의장인 파스칼 로가디와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의 로버트 필론 등은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릴레이 철야 농성 중인 영화인 대책위를 찾아 연설 및 격려를 할 예정이다. 양기환 대책위 대변인은 “과연 상대가 유럽이었거나 줏대 있는 제3세계 국가였다면 미국이 이처럼 오만하게 굴 수 있었겠느냐”며 “뺏으려는 자의 부당함 보다 지키려는 자의 정당함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또한 “지금은 FTA에 반대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몰리는 상황이라며, 영화 다음에는 농업, 방송, 의료 부문 등도 비슷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쿼터 축소와 관련한 질의 및 응답은 이날도 줄을 이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한국영화계가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앞으로 1년, 2년은 모르겠지만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가 언젠가 하강곡선을 그릴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전판”이라고 설명한 뒤, “미국의 경우, 본 FTA 협상에 들어가서 스크린쿼터와 관련해 어떤 요구를 더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검증이나 설득 없이 한·미 FTA를 강행하려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FTA가 체결되면 사회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고 그걸 메꾸기 위한 비용은 다시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도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천 의원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김재윤, 정병국, 손봉숙 의원 등과 함께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를 철회하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대통령령 시행령에 포함되어 국무회의에서도 조정 가능한 스크린쿼터 일수를 현재 발의된 영진법 개정안에 못박아 2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처리할 계획이고, 문화다양성협약 비준을 위해서 현재 외교통상부 쪽에 협약 동의안을 제출해달라고 촉구해 뒀다는 게 천 의원의 말. 그는 또한 2월14일부터 국회 상임위 별로 정부 부처별 업무감사가 있는데 “쿼터 문제를 FTA와 연계하지 않겠다. 대통령도 총리도 그런 뜻을 갖고 있다”고 지난해 11월 발언했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왜 말을 바꿨는지" 혹독하게 따져물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