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미란다 줄라이 감독
2006-02-03
글 : 오정연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마법과 같은 영화다. 온전한 하나의 세계와도 같은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평범하고 평범한 인물들, 그러나 이들이 서로에게 짧은 순간 강렬하고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다가서는 과정은 점묘법을 통해 완성한 소박한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사소해서 더욱 특별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관객의 좌뇌를 거치지 않은 채 우뇌를 자극한다.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언어 혹은 논리가 아닌 감성과 주관이, 때로 타인과 소통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은 물론이고 주연배우까지 소화한 그는, 일찌감치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했고, 행위예술의 일환으로 밴드 활동을 하면서 두장의 앨범을 출시했으며, 최근에는 단편소설을 완성하여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마치 그간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을 하나씩 더해온 듯 보이는 그의 행보들. 영화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상태에서 완성한 첫 장편 안에, 자신의 섬세한 낙관주의와 상냥함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미란다 줄라이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고, 영화 못잖게 상냥한 감독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 시간가량의 인터뷰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애초에 선댄스 작가 양성 프로그램(Sundance Writer’s Lab 이하 선댄스 랩)에서 세번이나 거절당했다고 들었다.
=선댄스 랩에는 1년간 세번에 걸쳐 시나리오를 제출할 수 있는데, 한번에 채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댄스 랩은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일종의 학교 같은 곳이어서 대부분의 경우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다시 쓰도록 만든다. 선댄스 랩에 채택된 뒤에는 1주일 동안 시나리오 작법을 배우고, 1년 동안 영화제작 과정을 익힌다. 일종의 워크숍인 셈이다. 거기서 만난 사람을 통해 프로듀서 지나 권을 소개받았고, 이후 9개월 동안 제작비를 구하러 돌아다녔다. 수많은 곳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만났다. 2004년 7월에 촬영을 시작해 24일 동안 촬영한 뒤 2005년 1월에 영화를 완성했다.

-<미 앤 유 앤…>은 한적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소도시에 대한 묘사가 매우 디테일한데, 실제 그런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나.
=난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자랐는데, 모든 면에서 영화 속 배경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 영화를 어디서 촬영했는지 궁금해하던데, 사실 난 반드시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았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를 찍었던 LA 근교에서 영화를 촬영했지만, 자신이 성장한 공간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토머스 앤더슨과 달리 나는 LA를 잘 알지도 못한다.

-지붕 위에 잘못 얹어진 금붕어를 살리기 위한 크리스틴의 노력, 전시회에 제출한 비디오테이프 끄트머리에 크리스틴이 숨겨놓은 깜짝 영상을 심사인인 낸시가 한밤중에 홀로 지켜보는 것 등 아련하고 슬픈 에피소드들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직접 겪은 일들도 있었나.
=나 역시 크리스틴처럼 제출한 작품을 거절당한 적이 있다. 그런 때는 단순히 거절당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를 충분히 보여줄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는 느낌 때문에 심하게 외로워진다. 대체 어떤 사람이 나를 떨어뜨렸는지까지 궁금하기도 하고. (웃음) 그리고 금붕어 장면은, 당신이 그것을 슬프게 봤다니 매우 다행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그 장면을 그저 재미있다고만 여기는 것 같더라. 심지어 편집 당시에는 그 장면에선 리듬감을 더 주고 좀더 재밌는 음악을 깔아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웃음)

-크리스틴, 리처드, 로비 등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데 비해 앤드루의 음란한 낙서를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10대 소녀 두명의 이야기는 다소 돌출적이다. 당신은 이들을 통해서 관객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나.
=그 에피소드는 일종의 ‘살아감’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그 순간을 견뎌나간다. 마지막 부분에 두 소녀가 앤드루의 집 대문을 두들기고는 결국 도망쳐버리는 장면은 매우 감정적이다. 그들은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지만, 사실 갈 곳은 없다. 10대 때의 우리는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어딘가로 달려가는 느낌, 어딘가로부터 해방된다는 느낌,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느낌은, ‘성장’ 못지않게 강렬하고 특별하다. 그리고 그들의 우정도 중요하다. 그맘때의 여자아이들은 친구 관계에서 정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영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채팅룸, 비디오, 전화 등 기계문명을 통해 소통한다. 기계와 기술이 우리의 소통을 돕는다고 믿나.
=난 테크놀로지에 별로 관심이 없다. 타인과 우리를 매개하는 기계들은 그 과정을 좀더 간단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주지만, 사실 소통은 그리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기계문명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입장은 아니다. 테크놀로지와 무관하게 소통은 그 자체로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소통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미 앤 유 앤…> 역시 그걸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을 포함해서, 우리가 1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테크놀로지 역시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나 역시 ‘learning to love you more.com’이라는 개인 프로젝트 성격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도 몇개 눈에 띄고, 전체적으로 음악 사용이 인상적이다. 음악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작업했나.
=<도니 다코>의 사운드트랙을 너무 좋아했던 까닭에 <도니 다코> 음악감독이었던 마이클 앤드루스를 영입했다. 편집을 끝낸 뒤부터는 그의 스튜디오에 살다시피하면서 함께 작업했다. 몇몇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선곡해놓았던 노래를 제외하면 모두 우리가 함께 새로 만든 곡들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캐스팅이 하나같이 너무 절묘하다.
=익숙하고 유명하다는 이유로 스타를 캐스팅할 경우에는 이 영화가 지녀야 할 어떤 공감대를 해칠 것 같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원했고, 어느 정도 괜찮은 배우를 만난 뒤에도 더 나은 사람을 찾으려 애썼다. 그 과정을 통해서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인물에 점점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캐스팅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몰랐고, 한동안은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배우를 만나고 관찰하는 일련의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연기연출의 특별한 비결이 있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그다지 많은 여지를 두지 않는 편이다. 나는 원래 시나리오를 쓰면서 직접 모든 인물들의 대사를 해보는데, 그것은 이미 배우의 연기를 구체적으로 정해놓는다는 얘기다. 로비로 출연한 브랜든 랫클리프는 머리가 정말 좋아서 대사를 외우는 것은 물론 내가 어디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하는지, 어느 순간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까지 지시하면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소화할 줄 알더라.

-10대 소녀들이 오럴 섹스를 자기만의 은어처럼 ‘지미 하하’라고 표현하는 부분은 어떻게 구상한 건가. 그 말은 당신이 일부러 만든 단어인가.
=그렇다. 시나리오에는 그냥 블로 잡(Blow Job: 오럴 섹스)이라고 썼는데, 그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10대 배우에게 그 단어를 말하게 하는 것이 아동 관련 노동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한에 짜증을 내면서 그 장면을 통째로 들어낼까 하다가 즉석에서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래, 이 단어를 못 쓴다 이거지? 그렇다면 아주 바보 같은 단어를 써주지.’ 뭐, 이런 심정으로 일부러 터무니없는 단어를 생각해냈던 건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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