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세계]
<플라이> 파리인간의 원조
2006-02-06
글 : 한청남

늦은 밤 부유한 사업가 프랑수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는 특별한 연구를 하던 과학자 동생 앙드레의 부인 헬렌이 건 것으로, 느닷없이 그녀는 자신이 남편을 살해했음을 고백한다. 경찰과 함께 사건이 벌어진 인쇄공장으로 달려간 프랑수와는 프레스기에 깔려 처참하게 죽은 동생을 발견한다. 그리고 헬렌은 사고 뒤 이상할 정도로 파리에 집착한다. 한편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프랑수와는 헬렌을 추궁해 사건의 내막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한다.

<플라이>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리메이크 작품이 더 유명하고 완성도가 높지만, 이 오리지널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커트 뉴먼의 <플라이>는 모든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리메이크와 달리, 앙드레의 비극적인 죽음을 영화의 첫 부분에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헬렌의 이야기를 통해 둘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사건이 재구성되는 추리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 점이 이 평범한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앙드레는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고, 왜 남편과 사이가 좋았던 헬렌이 갑작스레 살인을 했다고 하는 것일까?

<플라이>의 가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앙드레가 발명한 물체 전송기이며, 두 번째는 자신이 연구하는 실험이 잘못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학자의 처참한 말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이후의 장르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까지도 애용될 만큼 사랑받는다. 물체 전송기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앙드레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효과가 더 커진다. 파리가 물체 전송기에 들어오면서 앙드레의 유전자가 변한 탓이다. 이 변화 과정은 오리지널에서 볼 수 없지만(크로넨버그의 리메이크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충분히 앙드레가 겪는 심적 고통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플라이>는 비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무섭기보다는 슬픔의 정서가 더 강하다. 한순간의 실수로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고, 인격마저 점점 사라져가는 앙드레. 결국 아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전도유망한 과학자의 최후는 그 비극의 강도가 클수록 장르영화의 매력은 더욱 넓어진다. 단지 파리인간의 특수분장이 지금의 관객에게 문제다. 사실 분장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그 퀄리티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하나 <플라이>의 흡인력은 시각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여전히 관객을 매료시키는 드라마의 힘 덕분이다.

화질과 음향은 제작년도를 생각하면 무난한 수준이다. 부록으로 속편과 리메이크 예고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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