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삼식이의 홀로서기, <백만장자의 첫사랑> 현빈
2006-02-09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아일랜드>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까지, 상대 여배우들에게 잘 묻어왔다. 신인 연기자와 호흡을 맞춘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는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나무가 없었고 쉴 그늘이 없어진 것 같아 걱정했다.”

현빈(25)은 겸손하게 “그 동안 묻어왔다”고 표현했지만, 그가 이나영이나 김선아 같은 선배 배우들 곁에서 어부지리로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아일랜드>의 ‘강국이’였을 때 죽도록 멋진 캐릭터에 실물감을 입히는 쉽지 않은 연기를 보여줬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도 멋은 있지만 시청자와 무관한 세상 사람인 듯했던 ‘현진헌’ 역에 정감을 불어넣으며 친근한 ‘삼식이’가 됐다. 그리고 9일 개봉한 김태균 감독의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 브라운관을 통해 인정받은 연기력과 스타성을 한껏 드러낼 기회를 얻었다.

그 동안 뛰어난 선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춰왔던 현빈은 이 영화에서 신인 연기자 이연희(17)와 파트너를 이뤘다. 그는 애초에 걱정스러웠던 신인 연기자와의 작업이 오히려 ‘약이 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연희가 신인이라 상대 배우의 연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데다, 내가 영화를 끌고 가야한다는 부담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하게 됐다. 그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현빈은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통해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고, 혼자서 영화 한 편을 끌고가는 경험을 했다. 분명히 성과다. 하지만 안하무인 재벌 3세였다가 순수한 첫사랑의 경험을 통해 철 들어가는 ‘재경’은 ‘강국이’나 ‘삼식이’에 비해 전형적이고 단선적이다. 그런 재경을 담아낸 <백만장자의 첫사랑>도 현빈의 이미지와 첫사랑에 관한 소녀들의 판타지에 기댄, 예쁘지만 안이한 영화로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배우 현빈의 지평을 넓히기엔 아쉬움이 남는 선택인 듯하다.

하지만 그는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태연하고 단호한 이야기 뒤에 부연설명이 따랐다. “필모그래피에 작품 하나를 더 올릴 수 있게 됐다는 성과가 남았다. ‘한 작품을 더 했다’는 건 무시할 일이 아니다. 작품을 몇개 했느냐, 누구랑 일을 해봤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진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통해 연기가 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카메라 앞에 설 때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그는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통해 얻은 ‘여유’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안 했던 역들을 다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파트너와 함께 남자영화를 찍고 싶고, <진주만>처럼 사랑, 우정, 액션이 모두 담긴 영화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 작품 출연이나 연기 변신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아일랜드>를 끝내고 주변 사람들의 조급함과 무관하게 7개월이나 쉬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체적으로 바닥난 상태가 극복될 때까지 여행을 다니며 쉴 작정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와 다시 한번 드라마를 찍는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현빈은 “다음 작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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