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스크린쿼터는 ‘작은 영화’ 지킴이
2006-02-09
글 : 임인택

지난달 24일이었다. 이번 주처럼 바람이 세차지 않았다. 스크린쿼터 축소 같은 얘기도 없었다. 독립 또는 예술 영화라 불릴 ‘작은 영화’들만 무려 3편을 연이어 본 희한한 날이었다. 겨울철 한적한 극장은 느낌이 좋다. 벽면 어디께서 불어오는 온풍이 식은 살결을 적당히 빗기는데다, 은막에 가닿는 잿빛 영상마저 온기를 더해줄 법한 극장은 마냥 안심, 포근해지는 것이다.

낮 2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김응수 감독의 <달려라 장미> 기자 시사회로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서 곧장 일반 상영한 4시10분짜리 <갇힌 여인>(상털 애커먼)을 봤다. 50명이 채 안되는 관객들과 함께다. 연달아 보는 게 나로선 사실 상당의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는데도, 그러고선 밤에 또 하나를 보겠다고 어슬렁 기어나갔던 것이다. 마찬가지 한산한 극장, 시네큐브에서만 지금 만날 수 있는 아프카니스탄 영화 <천상의 소녀>였다.

영화를 좋아하지 거기에 빠지진 않았다고 생각해왔던 터다. 그러나 좀 변했나보다. 대작 상업영화들이 잘 찾아가지 않는 한적한 곳을 들추는 영화나, 자체가 한산한 극장에 슬근슬근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겉멋부터 들었는지 서울 아트시네마나 하이퍼텍 나다가 여느 브랜드 멀티플렉스보다 좋아진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작은 영화’만을 위한 이 ‘작은 극장’도 스크린쿼터제가 적용된다. 독립예술 영화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어쨌건 예서도 한국 영화들을 일정일 이상 의무적으로 틀어야 하는 것이다. 협상 대상이 아닌 문화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여길 찾는 관객들이야말로 국적 상관없이 작은 영화들을 즐기겠다며 제도 폐지까지 주장할 일이다.

큰 극장에 익숙한 관객들의 대개 생각은 조금 다른 각도로 나가있다. 한국 영화가 획일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닮아가면서 할리우드를 상대로 스크린쿼터를 지키려하는 게 자가당착이라는 논리다. 이 때문에 지금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 특히 영화인들은 예전과 달리 정부보다 60~70% 가량 축소에 찬성하는 대중 여론과 먼저 다투고 있다. 제도를 우산 삼아, 이미 엄청난 이득을 챙긴 영화업자와 스타 배우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논리가 뒤따르면 유동층 가운데 또 한 명은 등을 돌린다.

하지만 당장 서울 아트시네마, 시네큐브 등지를 가보면 안다. 여전히 작을 뿐 다양한 우리 영화들이 줄을 서있다는 사실, 빚져가며 영화를 만드는 배우나 스태프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그 영화들조차 충분하지 않아, 때때로 한국 상업 영화까지 올려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 아트시네마와 그곳에서 상영하는 설경구, 송윤아 주연의 <사랑을 놓치다>라는 묘한 조합은 그래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극장 배급망이 담보되지 않으면 영화가 당초 만들어질 수도 없다는 건 이제 전 국민이 알 법한 얘기다. 독립, 예술 영화들이 밑동에 있지 않으면 큰 영화들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 역시 그렇다.

우리 영화계 내 이익 재분배가 되지 않고,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지 못한 게 스크린쿼터의 잘못은 아니다. 큰 영화만 찾는 관객, 장동건의 얘기를 듣기보다 얼굴만 보려는 팬들의 책임이 차라리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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