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영파라치(영화+파파라치) 시행 첫주 풍경
2006-02-10
글 : 임인택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6일만에 16000건 “신고폭주” 서버 버벅, 한사람이 561건도

이달 1일 오전 11시, 이른바 ‘영파라치’(영화+파파라치) 제도가 닻을 올렸다. 영화 불법 파일을 ‘올리는’ 네티즌을 고발하면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포상 신고제다. 신고접수 사이트를 마련한 영화 홍보대행사 시네티즌과 법적 조치를 취하는 법무법인 일송이 10여개 영화 제작배급사 등의 위탁을 받아 꾸렸다.

시도 자체가 뜨거운 감자다. 한국에선 ‘제5권력’으로 일컫고도 남을 네티즌을 복판에 몰아세우는 일이라 그렇다. 시네티즌에서 전하길, “가뜩이나 돈도 많이 버는 영화업자들의 인색하고 치졸한 이권 지키기”라며 감정으로 맞서는 네티즌이 있고 “외국 영화를 다운받아서 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극장에서 한국 영화가 그만큼 인기”라며 치밀한 논리(?)로 대응하는 네티즌도 있다.

열린 광장은 자신이 타인에게 투명해지는 곳이다. 타인과 어울리고 마침내 광장은 점묘화인양 한 사람 한 사람 점점이 되어 근사한 풍경화를 이룬다. 그 곳에 파파라치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갑자기 그리고 무한으로 펼쳐진 온라인 광장 한가운데엔 2816억원짜리 영화 불법유통 암시장(2004년 기준·영화진흥위원회 추정)이 버젓이 자리를 펴고 있다. 무려 1천만명(멀티플렉스 씨지브이 추정)이 이를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으로 영화 파파라치가 생긴 것도, 앞으로 이 제도가 죽고 사는 일도 모두 네티즌에게 달린 것이다.

그 ‘광장’에 가다
지난 3일 찾아간 서울 강남의 시네티즌 사무실은 광장으로 들어서는 하나의 문일 뿐이다. 6일 오전 12시까지 신고된 수만 1만6천여건으로 그야말로 폭주다. 첫날 신고는 1400여건에 그치며 눈치 보기가 오가더니 둘째날 하루에만 5천건을 훌쩍 넘은 것. 1일부터 동시 접속자는 3천~4천명에 이르면서 서버가 더뎌지고 접속을 하려면 30~40분을 기다려야 한다. 급기야 시네티즌은 만 단위의 동시접속이 가능하게끔 서버를 급히 늘리기로 했다.

3일 오후 4시20분께 여전히 사이트는 두들겨 맞은 듯 힘이 없다. 전화가 온다. “천천히 기다리시면 화면이 뜰 거예요. 예, 기다리셔야 돼요. 지금 방법이 없습니다.” 신고 사이트를 전담 관리하는 김종엽 개발실장도 마냥 기다릴 뿐이다. 이 순간 동시접속자는 정확히 1600명. 신고는 용케도 5분당 2~3건 오른다. 그는 말했다. “접속자의 반 정도는 잠재적 피신고자로 보고 있어요.”

광장의 모순
영화 파파라치가 죽고 사는 일이 더더욱 네티즌의 몫인 이유는, 신고·피신고자도 네티즌이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메일을 보내왔다. “한 30개를 신고했는데 저도 사실 다운로드를 해봐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요. 가족, 친구를 신고했다는 느낌이….” 이 모순은 제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파라치 제도에 대한 찬반 다툼을 떠나 종국에 저작권에 관한 문제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면 희망에 가깝지 않을까. 더디게라도 온라인은 투명한 광장으로 탈바꿈하게 마련이다.

파일을 최초 올리는 수백명을 포함, 불법 업로드하는 이가 신고 대상이다. 이를 의식·무의식적으로 이용하는 네티즌은 다만 계도되길 제도는 원한다. 상위 유포 그룹 50만여명에서 불법 유통이 마른 들판에 불길처럼 번지는 것이라 초기 불법 파일 이용이 줄면 온라인은 그만큼 투명해지는 것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굿 나이트 앤 굿 럭>이 아카데미상 후보 6개 부문에 올랐다는 소식이 지난 2일 전해지며 화제가 되자 3일 낮 바로 한글 자막까지 달린 <굿 나이트…>가 유통되는 게 이곳, 온라인이다. 이택수 시네티즌 대표는 “비디오를 빌리려고 신발을 신는 시간에 영화 한 편을 다운받을 수 있는 실정”이라고도 말한다. 온라인의 가공할 속도가 불법의 매력을 키운다. 1988년 3만5천개에 달하던 비디오 대여점이 이젠 7천곳으로 줄어들었다. 어쩌면 그 만큼도 다행인지 모른다.

외국 영화는 주로 개봉 전에 유통되며 극장 수익을 잠식하는 반면, 한국 영화는 대개 부가판권 시장을 무너뜨린다. 네티즌이 영세 대여점도 다치게 한다는 얘기다. 6일 오전까지 가장 많이 신고된 영화 20개 가운데 한국 영화만 16개다. 이미 다들 개봉한 작품들로 <가문의 위기> <야수와 미녀> <웰컴 투 동막골> 순이었다. 이어 외화 <쏘우 2>는 16일 개봉 예정인데도 500건이 넘게 신고되며 ‘당당히’ 5위에 올라 있다. 배급자는 땅을 칠 노릇이다.

이달 개봉 예정작 가운데 최고 화제를 몰고 다니는 <브로크백 마운틴>도 이미 여럿 봤다. 포털 사이트 등에선 중국어, 프랑스 자막의 원화까진 도는데 우리말 자막은 구할 수 없냐고 대놓고 아우성이다. 이 영화 수입사 백두대간이 특히 피해를 본 작품은 현지 개봉과 국내 개봉 시간차가 많았던 <도쿄 데카당스> <헐리우드 엔딩> 등이다. 수입 개봉이나 비디오 출시가 느린 것을 탓해야 하는 걸까?

신고가 타당하면 신고자는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나 영화 티켓 2장을 받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혼자서 최대 561건(6일 오전 기준)까지 신고한, 맹렬 가담 네티즌이 나오는가 하면 “신고자를 자기한테 신고해주면 2만원을 주겠다”는 극렬 반대 네티즌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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