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2월11일(토) 밤 11시30분
서부극은 미국적 신화를 요약한다. 황량한 자연과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흔히 영웅적 행동을 한다. 그들은 개척자 정신이라는 미국의 신화를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존 포드를 비롯한 감독들은 정통적인 방식으로 서부극의 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이 장르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존 포드나 하워드 혹스 같은 감독은 서서히 영화계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관객은 다른 방식의 서부극을 보길 원했다. 이른바 수정주의 서부극의 시대가 열린 것. <미주리 브레이크> 역시 변화한 웨스턴의 모습을 보여준다.
1880년대의 혼란스런 미국 몬태나주. 여기는 당시 미국의 서부 지역 중 가장 험악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의 남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걸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평소 과격하기 이를 데 없는 톰 로건은 말 도둑 일당의 두목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악명을 떨쳐온 악당 중의 악당이다. 목장주인 데이비드 브랙스톤은 자신의 말들을 지키기 위해 리 클레이튼을 고용한다. 독특한 성격의 총잡이인 클레이튼은 냉정하게 말 도둑들을 하나둘 처단해나간다.
<미주리 브레이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부극과 비슷하되, 또한 그렇지 않다. 시간적 배경이나 공간은 개척시대의 미국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셰인>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근사한 영웅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예컨대, 클레이튼이라는 인물이 그렇다. 미치광이 살인자에 가까운 클레이튼은 잔인무도한 현상금 사냥꾼이나 마찬가지. 도둑 무리를 추적하여 괴롭힌 뒤 차례차례 죽여나가는 그의 모습은 광기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톰 로건 역시 말 도둑 일당에 속한다는 점에서 근사한 영웅으로 대접받기엔 좀 어려울 듯하다. 이렇듯 영화 속 인물들은 반영웅에 근접하고 있으며 외양 또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영화 속 클레이톤과 로건의 대결은 실소를 자아내는 구석이 없지 않다. 두 사람의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데 어이없게도 욕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조롱하며 비웃기도 한다.
<보니와 클라이드>나 <작은 거인>(1970) 등에서 미국적 신화를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보였던 아서 펜 감독은 <미주리 브레이크>에서도 역사와 도덕 등 굵직한 주제에 관심을 표한다. “특정한 사회의 모습은 그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 속에 각인되고 반영된다”는 견해를 반영하듯 아서 펜 작품 속 인물은 떠돌이 강도나 도둑 등 비주류에 속한 이들이 많다. <미주리 브레이크>에선 말론 브랜도와 잭 니콜슨 등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의 연기 또한 볼 만하다. 아서 펜 감독은 배우들 연기에 깊은 신뢰를 보이면서 그들에게 즉흥연기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