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씬하다. 그녀와 똑같은 청바지를 입었다고, 그녀와 똑같은 스커트 아래 똑같은 로퍼를 신었다고, 아무나 그녀 같은 피트가 나올 리 없다. 그녀는 말 그대로 모델 피트, 쇼윈도 마네킹 몸매다. 그 청바지를 평민이 입으면 엉덩이가 끼어 애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요, 들어갔다손 치더라도 바지단이 한뼘 반은 남을 것이다. 로퍼? 다리 길이 그녀와 같지 않고, 알토란 같은 종아리라도 키우고 있다면, 굽 1cm짜리 로퍼를 신는 건 차라리 자살행위다.
그리고 그녀는 예쁘다. 부어 있는 눈두덩이와 목 위로 주머니를 이룬 턱살들이 약간은 자주 목격되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예쁘기 그지없다. 긴 생머리와 도시적인 마스크. 귀엽게, 청순하게, 때론 사연 많은 소녀처럼 변하는 표정. 아니, 누가 그런 부은 눈과 턱주머니를 하고도 그녀만큼 예쁠 수 있단 말인가. 평민으로선, 역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내숭을 떨지 않는다. 본인이 예쁜 줄을 분명 알 터인데, 예쁜 척 얌전한 척은커녕 엽기만을 일삼는다. 패고, 소리지르고, 변명도 않는 그 모습이 연기라기엔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기에, (게다가 그녀는 신비주의의 귀감으로서, 뻘짓하러 쇼프로 한번 나오는 법이 없기에,) 평민들은 실제 그녀의 성격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하며, 예쁘지만 공주 아닌 그녀에 대한 호감도를 200% 상승시켰다.
그리고 급기야. 이 아가씨는 순수하기까지 하다. 유쾌 상쾌 발랄해 보여도 마음을 쉽게 주지 않으며, 몸은 ‘아예’ 주지 않는다. 뽀뽀는 언감생심, 손 한번 잡았으면 대박이다. 씩씩하고 귀엽고 예쁜데, 일편단심 민들레에, 지켜주고 싶은 순수함까지 갖추었다니! 이 정도 되고보니 한국인들의 호감도는 400% 상승으로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그녀는 ‘전지현’이라는 아이콘이 되었다. 예쁘고 당돌하고 씩씩하지만 사연과 아픔을 가진 듯 어딘지 지켜주고 싶은 그녀의 이미지는, 다수의 공주들은 당근 따라하지도 못할 성질의 것이고, 신은경의 과격함이나 윤소이의 쿨함과도 달랐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그녀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프린터 CF와 청바지 광고로 시작해,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정점에 다른 ‘전지현 이미지’는 이후 숱한 CF로 소비되는 과정에서 점점 식상해져갔다. <4인용 식탁>으로 한번 모험했으나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자, 그녀는 도로 주저앉는 듯 ‘엽기적인 그녀와 일곱 CF’를 보는 듯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찍어버렸다. 그때부터 역효과가 나기 시작했고 평민들은 “이제 지겹다.” “카메론 디아즈 흉내 좀 그만 내라.” “그래도 예쁘기‘는’ 하네.” 같은 말들을 하게 되었다. 전지현의 이미지는 ‘전지현만이 가진’ 것이었지만, 그녀 혼자서 자신의 이미지를 너무 많이 반복해버린 셈이다.
새 영화 <데이지>는 그런 지점에 서 있다. 그녀의 표현대로, 전지현은 <데이지>에서 ‘누구여도 좋을, 다소 평범한 캐릭터 혜영’이 되어 ‘전지현만이 가진’ 이미지를 버리고 ‘무난한 이미지가 되는 것’을 숙제로 삼았다. 이 터닝 포인트를 기점으로,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에서 벗어나 ‘전지현’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평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너무 멀리 온 스물여섯이 아닌, 무엇을 시작해도 좋을 스물여섯’이 되었다는 그녀의 발걸음을 그저 조용히 응원하는 것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