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세이예스
2001-08-14

■ STORY

결혼 1년째인 윤희(추상미)는 작가지망생인 남편 정현(김주혁)의 원고 출판 계약을 기념해 겨울 바다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정현은 윤희에게 약속한다. 이번 여행을 평생 못 잊을 추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그러나 모처럼의 나들이에 한껏 들떠 있던 부부는 갑자기 차에 뛰어든 M(박중훈)을 치게 되고, 그와 속초까지 동행하기로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싶냐”는 불쾌한 농담을 던지는 등 거칠고 무례한 M의 언행을 견딜 수 없어진 부부는 간신히 그를 따돌리고 여행길을 재촉한다. 정현은 자신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M을 폭행해 구속 위기에 처하고, 윤희는 ‘3일간의 동반 여행’을 합의조건으로 내건 M의 제안을 수락한다. M의 가학 행태는 점점 심해지고, 정현과 윤희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히고 만다. M은 분노와 공포의 극단으로 내몰린 정현에게 제안한다. “네 여자를 죽이라고 해. 그럼 넌 살아.”

■ Review

왜 하필 그들이었을까.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소박하지만 예쁘게 살아가던 새내기 부부. 그들이 연쇄 살인마의 레이더망에 걸린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그게 화근이었다. 사람과 사랑 때문에 깊은 내상을 입은 듯한 살인마 M의 눈에, 사랑을 믿고 서로를 믿는다는 그들이 고와보일 리 없다. 이제 M의 미션은 그들의 믿음을 공격하고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다. M이 주도하는 게임 <세이 예스>는 복수나 단죄를 위한 것이 아니요, 별다른 이유나 예외가 없는 공격이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사랑과 믿음이 사라진, 살기등등한 세상에 관한 우화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세이 예스>는 김성홍 감독의 전작 <손톱>과 <올가미>처럼 질투심이 부른 비극이기도 하다. 여고동창생의 완벽한 행복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는 여자나, 평생 키워온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며느리를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어머니나, 사랑 때문에 행복하다는 남녀를 파멸시키고 싶어하는 남자의 악마성은 ‘질투’에서 뻗어나온 것이다. <세이 예스>의 M은 시기하고 투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이라는 환상이 가둔 인간의 이기심을 풀어헤친다. 그는 정현에게 “날 말리지 않으면 내가 널 죽인다”거나 “네 여자를 죽이라고 말하면 살려주겠다”면서, ‘공격이 곧 방어’라는 서바이벌의 법칙을 주지시킨다. 이에 저항하는 정현의 분노와 공포가 게임의 동력이 되면서(<쎄븐>에서처럼), 가학과 피학의 에피소드, 그 스케일과 스릴은 예측 불가능한 수치까지 강도를 더해간다.

<세이 예스>의 스토리 구조는 전작들과 얼마간 공통분모를 갖지만, 인물과 상황, 분위기의 변화 진폭은 훨씬 가팔라졌다. 초반에는 정현과 윤희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에 포커싱한 멜로드라마였다가, 중반 이후로는 사지 절단과 고문이 횡행하는 핏빛 호러로 돌변한다. 질시의 대상이 가학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이렇게 해서 드라마틱한 에너지를 얻는다.

<세이 예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큰 영화다. 그 긴장과 공포와 고통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추격신의 박진감과 고문 살상장면의 잔혹함은 여느 한국영화가 개척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다. 외진 도로에서 M이 정현과 윤희의 차를 앞질러 급정거하는 아찔한 장면이나 정현을 온천에서 익사 일보 직전까지 물고문하는 장면은 그중 점잖은 편이다. 정현과 윤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M의 덤프트럭은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열린 공간에서의 거대한 공포를 조장한다. 이뿐이 아니다. 피와 찢긴 살점의 노출 빈도는 <텔미썸딩>을 능가한다.

M은 정현에게서 ‘예스’라는 답을 듣기 위해 손가락을 차례로 부러뜨리고, 부러뜨린 손가락을 또 부러뜨린다. 무고한 사람들의 목을 따고, 살아 있는 몸뚱이에 불을 질러 죽이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피바다가 되고 불길이 치솟는데, 이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찬찬히 보여지는 편이라, 비명을 지르기도 힘들다. 어떤 시사회에서 상영 도중 토하고 쓰러지는 관객이 있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충격요법’이 너무 과하다는 것. 영상도 충격적인데다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음악과 음향도 과잉이라 뭔가를 읽거나 느낄 겨를이 없고,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목소리와 제스처가 너무 커서, 무슨 얘기인지 정작 그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식이다.

살인마 M으로 변신한 박중훈, 그의 희생양이 되는 추상미와 김주혁의 성실한 연기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좀더 세밀했더라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 표현은 진부해서 어색하고, 이들이 M의 살해 협박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하는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M이 죽지 않고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도 미스터리. <세이 예스>의 기획 의도가 ‘인간의 광기와 슬픔을 역동적인 영상에 펼쳐내는’ 것이었다면, 그에 잘 부합하는 결과물임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일상을 파고드는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일상을, 개연성을 외면했다는 아쉬움은 떨쳐내기 힘들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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