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국식 블록버스터 <무극> 만든 첸 카이거 감독
2006-02-10
글 : 김수경

중국 5세대의 얼굴, 첸카이거 감독이 신작 <무극>과 함께 한국을 찾아왔다. 전날 미국에서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위한 상영을 마치고 내한한 그는 “판타스틱하다”는 관객의 반응에 고무된 얼굴이었다. 1984년 단 7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황토지>로 로카르노 영화제 은표범상을 거머쥐며 5세대의 개막을 전세계에 알린 첸카이거는 지난해 중국 역대 최고인 3000만달러의 제작비에 한·중·일의 간판 배우를 조합해 <무극>을 완성했다. 과거의 예술영화 감독은 지금 중국 상업영화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무극>은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중국 국내에서 극장 흥행성적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지난 주말 2500만달러를 돌파했고 손익분기점에 근접했다. <무극>은 중국에서 흥행에 관련된 기록을 일곱개나 경신했다. 최고 흥행작 <영웅>을 능가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비슷한 결과를 예상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6만여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극장에서만 900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길거리의 어느 가게를 가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무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문화적인 이벤트가 됐다.

-처음에는 윈난성에 세트를 지었는데 장마 때문에 촬영이 미뤄지고 결국 내몽골에서 대규모 군중신을 촬영했다. 엑스트라만 1천명이 넘는 군중신이 대거 포함된 6개월의 촬영기간 동안 겪은 고충에 대해 설명하자면.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상상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였다. 촬영감독, 미술감독과 그것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다. 촬영 당시 물리적인 장애물도 많았다. 윈난성 상그리라로 간 이유는 그곳의 풍경이 중국과 아시아의 문화를 집약해서 보여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모든 인원이 버스와 트럭으로 이동했다. 모두들 너무 고생스러웠고 숙박과 식사를 비롯한 모든 것이 예측불허였다. 수백만 위안을 들여 세트를 지었는데 촬영 직전에 그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쩔 수 없이 몽골로 다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씁쓸하고 비참한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돈만 낭비한 것이 아니라 시간도 허비했기 때문이다.

-<시황제 암살>도 베이징 허베이에 세트를 지었다가 향단으로 옮겨 촬영했다. 그 정도 대규모 세트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영화를 찍을 때 나는 모든 게 완벽하길 원하기 때문에 세세한 것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영화는 디테일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세트를 지은 후 로케이션을 옮기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도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돈이 아무리 투입되더라도 더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영화감독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술영화 감독이었던 당신이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중국 영화산업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파생된 결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딜레마를 느끼지는 않는가.
=내 전작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감독이라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상업영화 <무극>에도 예술적 가치가 있다. 다만 그걸 찾으려면 자세히 봐야 한다. 영화의 도입부 체리나무에서 꽃이 많이 떨어지는 장면은 아시아인들이 인생에 대해 갖는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무극>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의 전작에서 느꼈던 예술적 흥취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영화는 현재 아주 어려운 입장이다.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에서 만들 수 있는 영화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 기대되는데 그것은 미국이 아닌 우리 자신들이 개척해야 한다. 지금 시장은 미국 액션영화에 의해 80% 이상 장악됐고, 후일 중국영화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서양문명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영화인들이 그렇듯이 우리도 우리의 상업영화를 스스로 개발하려고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거나 지옥에 가더라도 (웃음) 이렇게 총대를 메야 한다. 비평가들이나 팬들이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바란다. 러시아나 대만처럼 과거에 아주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던 나라에서 지금은 어떠한 영화도 만들지 않는다. 그런 비극이 중국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업영화의 대중적 성공은 일종의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지칭하는 고사)이라는 말인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생은 짧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고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내가 미래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무극>에는 우아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있고 그것이 새 웨이브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색과 빛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상징이고, <무극>은 상업적인 요소와 예술성이 혼합된 영화다.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를 원하는 게 사람의 심정이다. 박스오피스의 대성공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피터 파우의 카메라워크, 티미 입의 의상과 세트디자인은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아쉬운 점은 CG가 촬영이나 의상의 완성도를 제대로 살려주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국에서 이러한 영화를 만들려면 최소 1억 5천만달러를 들여야 한다. <무극>의 CG를 위해 홍콩 센트럴 컴퍼니가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그것이 딜레마였다. 돈이 더 있었다면 더 좋은 방법을 택했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와인스타인 컴퍼니에서 미국 배급을 포기한 상황이다. 작품에 대한 견해차나 <붉은 갑옷의 장군>이라는 영어제목을 원했던 요소 등 여러 가지가 작용했는데, 새로운 배급사를 구하는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그들이 북미 배급을 포기하며 이 문제에 대해서 서로 비판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웃음) 그들은 이 일을 매우 열심히 했지만 입장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북미 배급은 더 큰 회사가 맡게 될 것이다. 미국 개봉은 오스카 수상식 이후에 진행되고 아마 메이저 배급사와 작업할 것 같다.

-5세대가 중국 영화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하에서 활동하던 6세대 감독들도 극장에서 공개될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중국 영화계의 큰 변화가 감지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전망과 준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중국에는 약 2천개의 스크린이 있다.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이 필요하고 그것을 건설하려는 사람도 많다.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5년이 지나면 6천개 스크린 정도로 늘어나리라 예상한다. 현재의 1천만 관객도 2천만 관객으로 늘어날 것이다. 나는 제작자가 아니라 감독이므로 어쨌든 영화를 열심히 잘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이해받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겠지만.

사진 최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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