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 강력부 고은주 검삽니다.”
16일 개봉하는 코미디 영화 <구세주>의 여자 주인공 신이(고은주)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다. 지난해 9월 개봉했던 <가문의 위기>의 여주인공 김원희(김진경)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 두 여자 주인공의 ‘검사’로서의 공통점은 이런 거다. 서울지검의 강력부에서 근무하면서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그들과 능수능란하게 주먹으로 ‘맞짱’을 뜬다. 갑자기 궁금하다. 서울지검 강력부 여성 검사들의 모습이 정말 그럴까?
그런데 초장부터 김이 확 빠진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라는 직함 자체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검사가 맞다. 심지어 서울중앙지검 마조부에는 여성 검사가 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유일한 마조부 소속 여성 검사인 수원지검 정옥자(37) 검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정 검사는 20일부터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한다. 그가 다시 마조부에 배치된다면, 서울중앙지검 마조부에도 여성 검사가 생긴다.)
일단, <구세주>와 <가문의 위기>에서처럼 여성 검사들도 ‘액션’이 될까? 조폭 두서너∼너댓명 정도 거뜬히 무장해제시킬 정도의 오버액션은 아니더라도, 손 올리는 놈 팔목 비틀고 덤비는 놈 옆구리 후려칠 정도의 격투기는 연수원이나 검찰청에서 가르쳐주지 않을까? 아연실색한 정 검사의 답변은 이렇다.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현장 수사는 대부분 경찰의 몫이다. 여성 검사뿐만 아니라 남성 검사들도 현장에 나가서 조폭같은 범죄자들과 치고받고 싸울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싸울 일이 없는데 격투기를 왜 배우겠나?”
이쯤 되면 묻는 게 오히려 낯 팔리지만 ‘확인사살’ 차원에서 덧붙여 물었다. 영화 속에서는 조폭 두목이 여성 검사를 협박한다. “다치지 않으려면 얌전히 있으라”는 협박 정도는 양질. 가족에게 해를 가하겠다는 고전적인 협박에서부터 검사한테 수면제를 먹여 성폭행 비디오를 찍으려는 대담한 시도까지 등장한다. 정 검사, “조폭이 어떻게 검사를”이라는 말로 단칼에 벤다. “조폭들이 합법적인 기업가로 변신해 뒤에서 주가조작 같은 경제범죄를 일으키는 게 추세다. ‘조폭두목’이라고 전면에 나서 검사와 담판을 짓는 무모한 방법을 쓸 리가 없다. 수하들을 거느리는 원리도 주먹이 아니라 돈이다. 조폭들이 불법적으로 굴리는 돈의 흐름을 ‘머리로’ 좇는 게 요즘 조폭전담 검사들의 주된 업무다.”
이제 영화 속 두 여성 검사의 ‘여자’로서의 공통점을 이야기할 차례다. 고은주 검사는 철딱서니 없는 생양아치 졸부 아들에게 순정을 바친다. 김진경도 검사직까지 내던지며, 조폭 두목과의 사랑을 지킨다. 이제 남자들도 영악해졌다. 예쁜 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똑똑하면서도 강인한 여성들, 그런 여성들의 대표 이미지격인 ‘검사’ 정도는 돼줘야, 그런 다음 사랑을 위해 헌신해줘야 재미도 있고, 그 욕심 많은 판타지도 충족된다. 정 검사는 말했다. “어차피 영화는 허구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여성 검사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것도 검찰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리감을 없앤다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하려거든 현실을 좀 제대로 알고 해달라. 그렇게 터무니없는 설정들은 재미를 위한 변형치고는 너무 심한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