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래도, 사랑이다, 김지수·조재현 주연의 정통멜로 <로망스>
2006-02-22
글 : 강병진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인생 앞에 찾아온 사랑. 그 구원과도 같은 손길을 놓지 않으려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들은 저마다 필연적인 눈물을 담고 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에서 자신의 사랑을 주체 못해 애달픈 가슴을 후려치는 남자를 구원한 은하와 사회의 핍박어린 시선 속에서 그녀를 보듬었던 석중은 구치소의 철창 사이로 손을 맞잡으며 울부짖었다. 또한 국가대표 호구인 <파이란>의 강재는 자신을 ‘친절한 강재씨’로 기억하는 한 여자의 순진무구한 애정이 담긴 편지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어디 이뿐인가. <오아시스>의 종두와 공주는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타인의 시선에 가슴을 태우며 아파했다.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그들에겐 자신의 행복을 보여줄 웃음보다도 감동에 북받친 눈물이 더 많았던 탓일 것이다.

영화 <로망스>에도 자신 앞에 닥친 이별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매일을 힘겹게 버티며 사는 외로운 이들간에 피어나는 애절한 사랑을 그려나가는 이 영화는 소중한 사랑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열정어린 순애보에 초점을 맞춘다. 형준(조재현)은 시답잖은 잡범에게까지 동정을 살 정도로 남루한 인생을 사는 강력계 형사. 잘못 선 빚보증으로 집까지 날려먹은 탓에 경찰 안에선 뇌물수수 가능성 0순위로 찍혀 있고, 술에 취한 날이면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혼한 부인에게 전화를 걸지만 돌아오는 건 짜증 섞인 비난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입가엔 핏기가 맺히고, 눈가엔 슬픔이 서려 있는 윤희(김지수)를 만나게 된다. 명망있는 가문의 며느리지만, 남편의 과도한 집착에 갇혀 사는 윤희는 돈에 팔려간 심청이마냥 피멍으로 얼룩진 일상을 견디고 있는 여자다. 한눈에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윤희와 형준은 울음을 배려하고 몸에 긁힌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하지만 현실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그들에게 죄의 대가를 요구한다. 형준은 이제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이처럼 ‘그래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로망스>의 줄거리는 여타의 영화들과 큰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이방인>에서 가족을 버리고 유럽을 떠도는 한 태권도 사범이 낯선 곳에서 만난 이방인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문승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 곳곳에는 형준과 윤희의 교감의 순간들을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묘사하려는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단편영화 시절부터 디지털 장편영화 <나비>에 이르기까지 ‘이미지’에 집착을 보였던 문 감독은 <로망스>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요즘 쏟아지는 트렌디한 멜로영화와의 차별성을 위해 사람이 직접 필름을 돌리는 수동카메라를 국내 영화 최초로 도입한 것. 그가 안타깝고, 절절한 감성을 어떻게 이미지화했는지도 이번 영화를 보는 한 관점이 될 듯하다.

여기에 조재현, 김지수라는 신뢰감 있는 배우가 가세, 통속적이고 뻔한 신파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거칠지만 그 모습 이면에는 항상 진심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조재현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슬픔을 드러내는 분위기를 가진 김지수도 훌륭하지만, 기주봉, 장현성 등 뛰어난 연기파 배우와 연극계에서 실력을 쌓은 엄효섭 등의 조연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들은 이야기가 흔들릴 때마다 튼튼히 조여주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해냈다.

<로망스>가 지난해 300만 관객의 눈물을 자극했던 <너는 내 운명> 같은 폭발적인 신파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로망스>의 등장인물

언제나 ‘열심’인 남자, 조재현 | 조재현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땀냄새가 난다. 드라마 <피아노>에서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고도 “기동성이 떨어진다”며 구두 대신 흰 운동화를 신은 채 바쁘게 뛰어가던 억관의 모습은 이후 조재현이 연기한 캐릭터의 밑그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맹부삼천지교>에서는 아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조폭과의 대결마저도 불사하였고, 드라마 <눈사람>에서는 처제의 도시락을 들고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비교적 작은 키를 가졌지만, 단단한 몸과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눈빛이 조재현을 항상 바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언제나 열심인 그에게 영화 <로망스>의 형준은 끈을 꽉 조인 운동화마냥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배역일 듯.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준 역시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피아노>의 억관을 닮아 있다.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거칠게 사는 형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조재현은 체중을 감량하는 한편, 대규모 액션 장면을 위해서 사격과 액션 훈련에 많은 힘을 쏟았다고. 준비 또한 열심인 그의 다음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이 영화에서 조재현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사학자를 연기한다.

우아한 눈물의 여왕, 김지수 | 아마도 형준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윤희의 짧은 미소였을 것이다. 극중에서 그녀는 격정적이고 화려한 탱고를 추면서도 슬픔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질척거리나, 청승맞진 않다. 그녀의 우아하면서도 고상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로망스>의 1차 포스터가 공개되자 네티즌들은 김지수를 가리켜 고전적인 우아함의 대명사인 ‘그레이스 켈리’에 빗대었다. 그러고 보면 모나코 왕국의 왕비이면서도 끊임없이 연기자의 삶을 그리워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그레이스 켈리의 비극적 운명은 언뜻 명망가의 며느리면서도 그 생활에 갑갑해하는 <로망스>의 윤희와도 닮아 보인다.

김지수의 비련미는 영화 이전에 브라운관에서 먼저 가꾸어졌다. 92년 SBS 공채로 데뷔한 그녀는 수많은 드라마에서 눈물을 머금은 여주인공을 연기했고, 이후 14년 만에 출연한 영화 <여자, 정혜>로 지난해 신인여우상 2관왕을 차지했다. 2006년에는 김지수의 눈물을 필요로 하는 영화가 유독 많다. <로망스> 외에도 그는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와 2006년판 <8월의 크리스마스>인 <미열>에도 출연할 예정. 유지태의 애절한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연인 민주는, 한석규와 함께 만드는 절절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은 또 어떤 모습일까.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분한 김지수의 마스크는 몇개나 될까.

한국영화 속 ‘공식’ 수사반장 | 최불암, 강신일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수사반장을 뽑으라면 기주봉의 이름을 빼놓아선 안 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강력반장과 <지구를 지켜라!>의 이 반장, <와일드 카드>의 김 반장, <튜브>에서의 중부서장, <공공의 적>의 형사…. 그의 ‘형사 인생’은 줄줄이 외우기도 힘들다. <로망스>에서 그가 맡은 역할도 역시 형준이 속해 있는 강력반 반장이다. 하지만 후배형사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기존의 역할과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윗선의 눈치를 보며 다소 현실에 묻어가려는 듯한 유약한 반장이다. 오척단신의 카리스마가 잠시 누그러진 듯하지만 그렇다 해도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기주봉의 모습은 이제 한국 경찰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가 된 듯싶다. 이쯤 되면 경찰청에서 명예수사반장으로 표창장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