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음란서생> 미리 보기 [1]
2006-02-23
글 : 김현정 (객원기자)

2005년 몇달 동안 <음란서생> 시나리오가 그렇게 재미있더라는 소문을 듣지 못한 영화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칙왕>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김대우 작가가 직접 쓴 감독 데뷔작이기는 해도, 실물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그 소문은 금세 사그라들었을 터였다. 웃기다가 애처롭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그러나 영화는 시나리오와 다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있을까 의심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2월23일 개봉하는 <음란서생>을 조급하게도 훔쳐보았더니 그 실체는 이러하더라는, 짧은 소개글이다.

빨간 표지의 서책을 집어든 사대부의 눈길이 ‘음부’라는 두 글자에 머문다. 제멋대로 커지고 흔들리며 그 눈을 희롱하는 단어 음부. 그날 이후 공맹의 도밖에 알지 못하던 선비 윤서(한석규)는 밤마다 수십 장의 파지를 내며 음부와 음경이 서로 만나 기뻐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행여 독자가 지루해할까, 새로운 체위를 구상하여 시연도 해보곤 한다. 처음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처럼 설레어 밤을 새우지 않을까. 그러므로 <음란서생>은 어느 선비의 연애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대부로서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하여 멸시를 받겠지만, 사랑하는 음란소설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지옥으로 향하는 발길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한 서생의 위험천만한 두 가지 사랑

<반칙왕> <스캔들-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김대우 감독은 어느 날 성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어느 ‘야설’ 작가의 팬들이 쓴 댓글을 보고 <음란서생>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소설을 써서 어느 팬이 전화를 하는 것보다 익명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편이 행복할 것 같았다. 인터넷은 작가의 지위나 신문평에 구애받지 않는 철저한 익명의 공간이 아닌가.” 신분의 족쇄를 차고 난잡한 소설쓰기에 몰두하는 선비. 김대우 감독은 작가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 자신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기도 하는 윤서를 그렇게 건져올려 다시 없는 행복을 얻은 사내로 내놓았다.

조선 제일 문장이라 불리는 윤서는 왕실에 위조 족자를 납품한 범인을 잡으러 다니다가 난잡한 소설을 베껴 아낙네들에게 빌려주는 대본소를 발견한다. 웬일인지 그 책을 잊지 못하던 윤서는 남몰래 소설을 하나 지어 출판업자 황가(오달수) 앞에 내밀고, 재능있다 칭찬받으며, 그 소설 <흑곡비사>를 시리즈로 써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못내 걸리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장안 최고의 음란작가 인봉거사다. 윤서는 그를 제치기 위해 삽화를 그리자 결심하고, 반대 당파에 속해 있지만 힘찬 붓놀림을 지닌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을 화가로 청한다. 배울 만큼 배운 두 사대부는 음란소설의 오묘한 재미에 젖어 다정히 머리를 맞대고 다음 편의 이야기를 논하고 삽화를 궁리하기 시작한다.

이 하나만으로도 벅찬 사랑이나 <음란서생>은 여기에 험한 사랑 하나를 덧대어놓았다. “꿈꾸는 것 같은 거, 꿈에서 본 거 같은 거, 꿈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거.” 최고의 작가가 되려면 이 ‘진맛’을 알아야 한다는 황가의 설명에 망연해하던 윤서는 족자를 위조한 범인을 잡아오라 청했던 후궁 정빈(김민정)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어렴풋이 그 이치를 깨우쳐간다. 그리하여 윤서의 정욕이 강해질수록 소설은 진맛을 띠고, 저잣거리 대본소를 기웃거리는 여인들은 빨리 책을 내놓으라 아우성을 치고, 책을 베끼는 필사장이와 모사장이의 붓질은 달음질을 친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

한석규는 제법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잔가지를 치면서도 치밀한 어조를 잃지 않는 이 영화가 실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라 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 다만 얻는 게 있으면 잃기도 하는 법이다.” <음란서생>이 사극이면서도 시대와 고증에 얽매이지 않는 건 그것이 고금의 진리인 탓이다. 애초 유명한 소설가가 익명으로 음란소설을 쓰는 이야기를 구상했던 김대우 감독은 다만 작가에게 좀더 단단한 족쇄를 채워주기 위해 법도가 엄했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택했다. 만약 윤서가 <흑곡비사>의 작가 추월색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의 집안은 살아 있는 윤서를 장사지내고, 죽은 사람으로 여기며 뒷방에 유폐할 것이다. 그 자신과 가문의 이름이 생명이나 다름없는 사대부에게 그것은 생매장보다도 가혹한 형벌이다. 그럼에도 윤서는 멈추지 못한다. 도리어 “작가는 원래 이런 거 쓰고 다니는 거라니까”라며 황가가 건네준 색안경을 끼고 흐뭇하게 웃는다. “작가라….”

그것은 김대우 감독이 오래전에 느꼈던 희열이기도 했다.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했을 뿐이었던 김대우 감독은 밤거리에서 김유진 감독(<약속> <와일드 카드>)이 그를 김대우 작가라 칭하는 말을 들었다. 작가, 작가라…. 김대우 감독은 그때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결심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 소개가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김대우 감독은 “차근차근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못하여” 윤서가 음란소설에 빠지는 계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나 안다. 윤서 앞에 아른대는 ‘음부’라는 두 글자.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다 해도, 그 느낌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우아한 대사, 웃음이 나는 욕망

김대우 감독은 <정사> <반칙왕>에서도 그처럼 번쩍이며 눈앞을 때리는 듯한 만남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코미디와 멜로와 장중한 비극이 한데 어울린 <음란서생>은 무엇보다도 그런 시나리오들을 썼던 김대우 감독의 작가로서의 재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음란서생>은 단지 몇줄에 불과하다 해도 사록에 기반을 둔 <왕의 남자>나 시대극인 원작을 각색한 <스캔들…>과 다르게 빈터에 지어올린 이야기다. 그렇다고하여 매우 현대적인 대사와 상황을 구현하는 퓨전 사극이라고도 볼 수 없다. 공들여 손바느질한 한복의 선처럼 우아한 대사, 점잖은 사대부의 체통을 한겹 둘렀기에 웃음이 나는 욕망, “만나서 좋았소, 정말 좋았소”라며 작별을 고할 수 있는 희열의 순간들. <음란서생>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격한 인생사를 하나로 끌어모아 정갈한 그릇 안에 담아낸다. 그처럼 요동치는 드라마를 통제할 수 있는 재능은 범상한 것이 아니다.

“금수나 할 법한” 체위를 설명하면서도 한자 단어를 구사하며 격조를 잃지 않는 <음란서생>은 그림 또한 우아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사건이 실내에서 벌어지고, 총애받는 정빈의 처소를 제외하면 그 공간이 좁기 때문에, 북적거리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들여 지어 예쁘고 아담한 소품들을 들여놓은 <음란서생>의 공간은 지나치게 담백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빛과 그늘이 어울리는 낯선 미를 창조한다. <음란서생>의 밤은 창호지 사이로 촛불이 새어나오고 호롱불이 유기에 반사되어 음란한 행위를 은은한 빛으로 감싸안는 시간이다. 그 때문에 대낮 야외의 풍경이 다소 초라해 보이는 느낌이 있지만, 아무리 세상이 달라 보이는 신천지가 되었다 해도, 음란은 밤의 용어일 것이다.

<음란서생>은 그저 품위와 체통을 지키는 영화만은 아니다. 풍속화처럼 생동감 넘치는 평민 황가와 속에 담은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선비 윤서의 충돌, 윤서와 광헌이 저도 모르게 음란소설에 빨려들어가 진지하게 교접을 논하는 모습, 댓글이나 동영상처럼 현대적인 장치를 시대극 안에 녹이는 재치. 이런 장점들은 코미디영화는 많아도 유머를 찾기 힘들었던 한국영화에서 모처럼 만난 보물이다. 웃기고자 작정하지 않았지만 그 상황에 빠지고 만다.

한 선비의 인생 최고의 순간

곰곰이 따지고 보면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음란소설에 전부를 던지는 윤서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꽃이 피어나는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되는 <음란서생>은 그처럼 처음 햇빛을 바라보며 꽃을 피운 윤서의 한순간을 비추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책을 기다리는 이가 많아 의금부 도사가 들이닥쳤는데도 묵묵히 책을 베껴쓰는 필사장이는 그 책을 비웃는 윤서에게 말한다. “그야 새는 하늘만 날고 물고기는 물속만을 헤엄칠 뿐이지요. 새가 물고기를 모른다고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요.” 고고하게 하늘을 날던 새가 물이 깊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으니 이제는 날개로 물결을 저어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늘도 물도 아닌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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