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우연히 몇몇 영화 담당 기자만 남은 술자리에서 영화기사의 방향에 대한 짧은 논쟁이 오갔다. 요컨대 영화의 완성도와 관객의 취향을 기사가 어떻게 조율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이제 필요한 건 좋은 영화를 ‘띄워주기’가 아니라 얄팍한 사탕발림으로 대중을 ‘우롱’하는 영화를 경계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꺼냈다. 갈수록 영화 기사가 지지하는 영화는 흥행성이 부족하다는 쪽으로 해석되어지는 현실에서 나온 일종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들지만 수긍하기는 힘들었다. 영화 기사가 무조건 대중의 선택을 지지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취향의 문제인 영화 선택을 계도해야 한다는 것도 좀 낡은 발상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면 나오는 영화지면이 영화 비판에 할애된다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사들에서 ‘대략 난감’ 정도의 평을 받거나 외면당한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면 헷갈리는 기분이다. <투사부일체>는 600만명을 동원하며 코미디 영화의 흥행기록을 세웠고 <구세주>가 개봉 첫주 흥행 1위에 올랐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방송 홍보 등 막강한 마케팅의 힘을 받으며 좋은 기록을 세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터이다. 코미디 흥행 공식 따위의 기사가 종종 나오기도 하지만 명쾌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팔짱끼고 “관객 수준이…”라고 말하는 건 영화 기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니다. 그럼 뭐지? 난 무엇을 위해 영화기사를 쓰는 걸까?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방송기자가 아닌 시청자로 주말에 하루종일 텔레비전을 끌어안고 사는 나의 시청 태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영화 채널에서 평소 보기 힘든 고전영화를 방영했을 때 ‘영화기자로서’ 반가워하며 고정했던 채널은 언제나 20분도 안돼 지상파의 코미디나 농담따먹기 토크쇼 채널로 돌아가있다. “역시 영화는 스크린에서 봐야 돼.” 아무도 추궁하지 않은 자기 변명을 하지만 결국 쉬고 싶은 것이고 쉴 때는 아무 생각없이 허허실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시청자 아닌 영화기자로서의 고민까지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건 아니다. 호들갑을 떨자면 한 때는 예술영화 포스터에 금테처럼 둘려있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따위의 화려한 기록이 이제는 홍보를 위해 ‘숨겨야 할’ 비밀이 된 것처럼, 언젠가 영화 기사의 상찬이 곧 흥행의 걸림돌처럼 여겨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몇년 전만 해도 신문마다 한 자리를 차지하던 평론가들의 진지한 영화비평이 이제 모두 사라졌다는 건 이 우려가 엄살만은 아니라는 걸 뒷받침한다.
대중영화나 신문이나 대중과의 소통이 관건일진대 관객과 영화 기사가 서로 등을 돌리는 건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을 것같다. 그렇다면 영화 기자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명쾌하게 풀리지 않는 이 고민이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많은 영화 기자들의 머리 속을 짓누를 가장 큰 난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