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우디 앨런의 누아르 혹은 치정극, <매치 포인트>
2006-02-23
글 : 오정연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청년 크리스(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는 과연 운을 타고난 사람일까. 넉넉한 가정환경을 가진 친구 톰(매튜 구드)의 여동생 클로(에밀리 모티머)와 연인 사이로 발전한 크리스 앞에는 탄탄대로만이 펼쳐진 듯 보인다. 그리고 톰의 미국인 약혼녀 노라(스칼렛 요한슨)가 나타난다. 재능없는 배우지망생 노라와 크리스는 점차 서로에게 빠져드는데, 주어진 운을 포기한 채 무모한 사랑을 택하는 건 아닌가 안타까울 정도다. 그러나 둘은 안정된 삶을 택한다. 얼마 뒤. 클로의 남편으로 장인의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크리스는 톰과 헤어진 채 힘들게 살아가는 노라를 만난다. 클로와의 결혼을 깨지 않은 채, 노라와 불륜을 즐기는 크리스의 운은 어디까지일까. 그는 이제, 특정한 선택을 강요당한다.

로맨틱코미디와 멜로드라마, 치정극과 누아르, 블랙코미디 등 온갖 종류의 장르를 넘나드는 <매치 포인트>의 시놉시스에서 우디 앨런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뉴욕이 아닌 런던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대사와 캐릭터가 아닌, 플롯과 윤리다. 나약하고 신경질적인 우디 앨런 본인의 캐릭터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칸에서 공개된 뒤 “전형적인 우디 앨런의 영화는 아니”지만, <애니 홀> <한나와 그 자매들> 등 앨런의 초기영화에 버금가는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영화답게, 곳곳에서 그의 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한점을 의미하는 ‘매치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한 감독은,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등의 비장한 오페라 아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등장인물의 운명을 비웃는다. <죄와 벌>을 읽던 크리스는 끝내 라스콜리니코프의 길을 걷는가 싶지만 이런 기대 역시 노장의 절묘한 유머 속에 좌절된다. 세상은 선과 악의 전쟁터가 아니라, 다양한 악이 존재하는 가운데 좀더 운이 좋은 자가 승리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영화 <매치 포인트>는, 한없는 우울과 비아냥 속으로 관객을 밀어넣는다.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로 지명됐다. 4월20일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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