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떡과 애로(愛勞)영화 쓰기 [1]
2006-03-02
글 : 이종도

근자에 듣자하니 <음란서생>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영광을 다시 노린다고도 하고, 요즘 세상엔 온통 멜로영화만 극장에 간판을 달 수 있다는 말이 파다하고,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뒤에서나 수군수군대던 사랑까지 그림으로 옮긴다 하니 개나 고등어나 연애영화 만들기를 꿈꾼다 하더라. 불초소생 말석에서 떡영화 만드는 법 훈수나 한번 두어볼까 하니 귀 있는 자 재미로 듣고 웃음으로 흘려버리시게들(에로를 애로로 통일하는 뜻은 다들 아시리라. 땀방울도 사랑의 노동도 없는 에로는 에로가 아니므로).

1. 연애라는 게임의 설계

<스캔들-조선남녀상렬지사>

“그 아이 이제 열여섯. 얼마나 호기심이 많겠소. 상냥한 말 한마디면 그냥 자리 깔고 누울 때 아니오?”

모두가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연애를 꿈꾼다고 하더라. 동성애든 이성애든 불륜이든 신파든 모두 사랑에 목말라 한다고 하더라. 그건 플라톤이 일찍이 간파한 대로 본디 하나였던 사람이 둘로 나뉘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프로이트 말대로 인생이 ‘억압된 욕망의 소원성취’를 향해 가는 것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떡’ 하나 세상에 주고 싶은 그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아 그게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그대들이 전하는 간절함이 관객에게 알알이 전해지면 그뿐인 것을. (예전에는 ‘떡’을 떡메로 내려쳤기 때문에 떡을 섹스의 속어로 썼을 것이나 그런 떡메 요즘 본 자도 드물 것이거니와 그 촌스럽고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은 용법은 폐기하야 옳을 것이로다. 쫀쫀하게 달라붙는 ‘케미스트리’의 특성과 섹스의 유사성을 오히려 주목하는 게 나을 것이니!) 村上春樹(하루키)씨 가라사대, 비평가나 개 따위를 무서워해서야 글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니 오직 그대의 심장이 시키는 대로 글이나 먼저 쓰시게.

1-1. 욕망을 낯설게 하기

열여섯에 자리 깔고 눕는 처자가 어디 있다고 <스캔들…>의 조원(배용준)은 근거도 박약한 헛소리를 하는가. 그러나 왜 그런 헛소리가 유독 귀에 착착 와서 감기는지 그 연유를 따져봄이 어떠한가. 연애야 만인의 관심사지만 그럴수록 낯설게 해야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본다는 건 정한 이치라. 매일 보는 지겨운 베드신, 요신으로 한번 불러봄이 어떠한가. 그게 <스캔들…>을 만든 영화사 봄(春) 뜻이렷다(어허, 이것 봐라. 영화사 이름부터 춘정(春情)이 가득하고나!). 음탕하고 야한 걸 음탕하고 야하다고 하면 벌써 지겨워질 터. 조원이 지은 책은 예스럽게 ‘조씨추문록’이라 부르고, 대신 영화 이름은 모던하게 <스캔들…>이라고 짓는 첫걸음부터가 떡영화의 abc라. 늘 먹던 떡, 라이스 케이크라고 부르는 자세야 말로 참된 떡 작가의 기본 소명이라. 영화 처음부터 누드모델과 정을 통하는 조원과 엄숙한 포즈로 제사를 드리는 조씨부인(이미숙)을 교차편집하는 당돌함은 그 오래되고 지겨운 주제인 연애를 또한 새롭게 보여주는 태도 아니겠는가.

1-2. 욕망의 지연 - 게임의 내용

이런 발칙함이야말로 늘 후줄그레하고 지겨운 연애라는 주제를 혁신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건 두말하면 입 부르트는 소리라 하겠소. <스캔들…>의 내용은 잘 알다시피 프리섹스 주의자 조원과 조씨부인이 숙부인(전도연)의 정절 무너뜨리기 내기를 한다는 것. 어떤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르는지는 인류의 오래고 또한 새로운 호기심일 터. 자, 질문은 이제 잘 던졌는데 답은 언제 어떻게 내릴꼬? 최대한 그 정절을 아슬아슬하게 무너뜨리는 게 게임의 관건임은 삼척동자도 아는 소리 아니겠소. 아슬아슬, 줄 듯 말듯 애간장 태우기가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이라오.

2. 떡은 떡답게 쳐라

<외출>

<음란서생> 어투 흉내내느라 혀 비뚤어지기 전에 말투 한번 모던하게 고쳐보자. 떡과 애로로 가기 전에 먼저 우리가 넘어야 할 건널목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멜로. 멜로에서 옷 하나 벗기면 에로가 되는 거, 님에서 점 하나 고치면 남 되는 이치랑 똑같다 보면 되시겠다. ‘충무로의 멜로 대마왕 하면 허진호, 허진호 하면 멜로’는 ‘열여섯’이면 자리 깔고 누워 다 외울 수 있는 국민상식이다. 그런데 <외출>은 이전의 허진호다운 멜로에서 너무 멀리 ‘외출’을 해서 관람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왜 그랬는지 따져보자. 그러니까 <외출>은 반면교사다. ‘실패에서 배운다’, 그게 <ME> 학교의 교훈이란 거 잘 아시지? 왜냐하면 우리 학교는 ‘야메’니까. 야메 정신. 그런 헝그리함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2-1. ‘금기’를 낯설게 하기

어이쿠, 벌써 항의 들어오네. 공짜 학교 다니시면서도 그렇게 성급하게 손들고 질문하는 버릇, 좀 집에 두고 나오시라. 왜 욕망을 낯설게 하라면서 금기도 낯설게 만들라고 하느냐는 항의 소리에 귀가 다 아파온다. <외출>은 뻔한 금기를 주제로 들여오면서 패를 다 까고 시작하는 용감무쌍한 영화다. ‘옆집부인 바람났네’는 사실 영화로 써먹기엔 너무 진부한 소재 아니던가. 바람 피우다가 교통사고 난 남녀의 본래 짝들인 인수(배용준)와 서영(손예진)이 눈맞는다는 얘기가, 언제 적 쌍팔년도 자유부인 얘기냐 말이다. 오히려 시아버지랑 바람나는 <데미지>나 의붓엄마와 바람나는 <페드라>처럼 고전적인 주제가 오히려 더 금기의 강도에서는 <외출>보다 훨씬 더 세지 않은가 말이다. 연애영화는 본질적으로 지루하며, 그 지루함이라는 숙명을 피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종국에 이르러 연애는 모두 다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이 바닥의 이치다. ‘그들’의 불륜을 ‘나’의 아름답고 숙명적인 불륜으로 치환시켜야 영화가 기억된다. 금기와 금지가 강할수록, 주인공이 나와 비슷할수록 그들의 불륜이 나의 멋진 로맨스로 바뀐다. <외출>은 평이한 제목, 평이한 금기, 너무 멋있는 왕자 같은 주인공과 너무 참한 공주 같은 주인공이라는 청개구리식 설정으로 관객을 쏙쏙 피해갔다. 사촌 사이의 아찔한 관계를 드러낼 듯 말 듯한 <스캔들…>의 세련됨이 <외출>에는 전무했다. 우리 동네 슈퍼 김씨도 하고 옆동네 꽃집주인도 하는 ‘외도’를 누가 돈내고 보겠는가 말이다. 도저히 안 그럴듯한 슈퍼 김씨가 ‘외출’ 해야 재미있는 거다.

2-2. 디테일로 ‘쑈부’ 보기

그러나 허진호 감독이 고스톱쳐서 멜로대마왕 자리에 등극했던가? 그 섬세한 세부 묘사가 우리를 달뜨게 했던 것 아니던가. 다림(심은하)이가 편지를 문틈으로 안타깝게 밀어넣는 장면, 정원(한석규)이가 만년필 잉크를 물잔에 푸는 장면(<8월의 크리스마스>),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랑 헤어진 뒤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지혈하는 장면(<봄날은 간다>) 등이 우리 마음을 흔든 것 아니던가. ‘허테일’은 <외출>에서 거의 유일한, 기억할 만한 디테일인 여관방 사과깎기 스펙터클조차 첫 정사 뒤에 배치했다. 패를 다 까고 시작한 악조건을 뒤집을 만한 기회조차 내팽개치고 만 것이다. ‘함께 잠을 잤으니 여관방에서 사과를 깎아먹는다’는 안이한 진술을 할 게 아니라 ‘여관방에서 함께 사과 깎아 먹을 사이면 앞으로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을 주었어야 했다. 여관방에서 사과 깎아먹는 상상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런데 그 놀라운 걸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다니, 자기가 ‘난’ 줄도 모르고 판돈을 내주는 어수룩한 도박꾼 아닌가. 호텔방에서 ‘열여섯’ 첫 섹스하듯 하는 수줍음은 다시 말해 무엇하리(금지된 사랑일수록 폭발하게 마련인데 그들은 바른생활 모드로 엉금엉금 서로에게 기어들어간다). 금기를 제대로 건드릴 일이 아니었다면 디테일로 ‘쑈부’를 봐야 한다. 금지된 선을 넘었는데도 같은 귀고리를 하고 있으면 관객이 속고 싶어도 못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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