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6일 개봉을 앞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스윙 걸즈>가 2월28일 서울극장에서 기자 시사를 가졌다. 1967년생인 야구치 시노부는 1996년 전주영화제에 출품된 <원피스 프로젝트>를 통해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알린 이후, 한국영화 <산전수전>으로 리메이크된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워터 보이즈>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나온 감독이다. 평범한 여고생들(과 한 명의 남고생)이 순전한 우연으로 재즈를 접하고 천천히 빠져들어 천신만고 끝에 근사한 빅 밴드를 완성하는 이야기를 그린 <스윙 걸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 중 남고생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워터 보이즈>와 ‘남매’를 맺을 만하다. 무엇보다 다케나카 나오토가 이번에도 아이들을 고비에서 이끌어준다.
몸을 비꼬며 여름방학 수학 보충수업을 듣던 토모코(우에노 주리)와 친구들은 교실을 벗어날 요량으로, 야구 응원 간 밴드부의 도시락 배달을 자청한다. 그러나 식중독 사고 때문에 졸지에 밴드부를 대신해야 할 책임이 떨어진다. 악기를 만져본 적도 없는 소녀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밴드부의 천덕꾸러기이자 심벌 주자였던 나카무라(히라오카 유타). 가까스로 합주의 뿌듯함을 터득하려는 소년 소녀들은 복귀한 밴드부에게 악기를 빼앗기고 그때부터 토모코를 비롯한 친구들의 가슴 속에 재즈를 향한 예기치 못한 애착과 열정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이후의 스토리는 수많은 청춘영화나 음악영화가 그려놓은 지도를 크게 어긋남 없이 따라간다. 그러나 야구치 시노부는 이런 종류의 앙상블 영화의 습성과 다르게 각 인물이 음악에 의지하게 된 숨은 사연을 굳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악기를 사고 실력을 닦고 음악제에 가기까지 스토리를 명랑하고 빠르게 움직여 가는 데에 집중한다. 아귀가 맞지않는 대화 틈새에서 비어져나오는 웃음, 가학적이지 않은 저자극성 유머가 <스윙 걸즈> 최대의 사랑스러움이다.
개천을 사이에 둔 소년 소녀의 난데없는 듀엣,<웰컴 투 동막골>의 멧돼지 잡기에 필적하는 멧돼지와 아이들의 대결은 압권이다. 시나리오는 느슨한 편이라 때로는 만족스런 결론이 없거나, 딱 하나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듯한 장면도 간간히 있지만 단추를 두 개쯤 풀고 발장단을 치며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2004년 <키네마준보> 베스트10에서 7위에 올랐고, 오는 3월10일 방한하는 우에노 주리가 이 영화로 2004년 일본 아카데미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상영시간 105분, 12세 관람가.
<스윙걸즈> 100자평
일본청춘영화에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면, <스윙걸즈>는 가장 그에 충실한 영화일 것이다. 시큰둥한 태도에 오합지졸의 실력을 갖춘 소녀들이 열정을발산하며 스윙재즈를 연주하기까지, 유쾌한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영화 보는 내내 깔깔웃으며 흥겨운 리듬에 귀를 적실 수 있다. 그렇다, 문제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황진미/ 영화평론가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나를 알겠느냐'는 고딩들의 시큰둥한 속내에 작은 불꽃을 붙여 끝내 화려한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이야기 구조가 감독의 전작 <워터 보이즈> 소녀판이라 할 만한 영화. <워터 보이즈>가 남자다움에 대한 어설픈 강박에서 소년들을 구출해냈다면 <스윙 걸즈>는 어른의 음악, 자유의 음악 ‘스윙’의 세계로 소녀들을 인도한다. 가끔 툭툭 튀는 장면도 감싸 앉아주고만 싶은 사랑스럽고 똑똑한 영화. -김은형/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