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70년전 영화 맞아? 최초 극영화 ‘미몽’
2006-03-02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36년 양주남 감독이 연출한 〈미몽〉(일명 죽음의 자장가)이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이 지난해 12월에 중국전영자료관으로부터 수집한 1930~1940년대 한국영화 3편 가운데 한편이다. 지난 28일 영상자료원의 발굴공개전에서 만난 한국 최고(最古)의 영화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일단 소재부터 몹시 파격적이다. 남편과 딸을 버리고 바람난 여자 애순(문예봉)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영상자료원 쪽이 “여성의 욕망 표출에 있어서 20년 뒤에 제작된 〈자유부인〉을 능가한다”고 평가할 정도다.

애순은 허영이 심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편(이금룡)과 불화를 겪는다. 그리고 집을 박차고 나와 정부와 함께 고급 호텔에서 지낸다. 이건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 같은데, 70년 전이면 여자들이 남편하고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부엌데기로 살던 그런 때 아니었나? 그런데 애순은 너무도 당당하게 집을 뛰쳐나오는 것도 모자라 외간 남자와 함께 버젓이 호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거 2000년대 아니야? 어디 그뿐인가. 애순은 지역 유지인 줄 알았던 정부가 가난한 범죄자임을 알게 된 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경찰에 신고해 버리고 유유자적 제 갈 길을 간다. 70년 전 여자 애순은 ‘가난해도 좋아요, 범죄자면 어때요, 당신 뿐이에요’ 같은 눈물의 순애보를 예상했던 나의 무지한 상상력을 그렇게 비웃었다.

결말은 또다른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애순은 기차 시간을 맞추려고 택시기사를 재촉하는데, 애순의 딸이 그만 그 차에 치이고 만다. 그제야 자책감을 느낀 애순은 독약을 마시고 자살해버린다. 여성의 욕망 표출에 대한 가차없는 응징처럼 보이고, ‘시대의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종원 동국대 겸임교수의 지적처럼, 아직 자동차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 “교통사고를 가족의 붕괴로 연결짓는” 시도가 신선할뿐더러, 그 당시에 이런류의 통속극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미몽〉, 그리고 함께 수집된 다른 두 편의 영화 〈반도의 봄〉(1941·이병일 감독)과 〈조선해협〉(1943·박기채 감독)은 일제강점하 생활상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 이외에 영화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기본적으로는 해방 전 영화의 공백을 일부라도 메울 수 있게 됐다.(참고로, 1935~1945년에 만들어진 62편의 영화 가운데 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영화는 11편이다.) 또 〈조선해협〉 같은 일제강점기 친일 영화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 자료가 마련됐고, 제작진을 잘못 기재하거나 유부녀 애순을 미망인으로 둔갑시키는 등 정확하지 않았던 한국 영화역사자료의 오류들을 수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문근영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다는 문예봉을 비롯해 김인규, 김일해 등 당대 스타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진귀한 경험도 가능해졌다.

일반 관객들도 원한다면 이 희귀한 영화들을 직접 볼 수 있다. 영상자료원은 2~5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최고(最古) 한국영화 〈미몽〉(1936) 발굴공개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에 공개된 3편은 물론 지난 2004년 발굴됐던 〈군용열차〉(1938) 등 극영화 4편과 기록영화 〈해방뉴쓰〉(1943)도 함께 상영한다. 문의는 한국영상자료원 고객센터(02-521-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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