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의 눈빛을 직접 대면한 듯 깊은 잔상을 남겨준 건 정혜의 눈빛이었다. 손 내밀어 붙잡아주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여리고 은은한, 그리고 투명한 눈빛. <여자, 정혜>의 그 눈빛은 <박수칠 때 떠나라>의 끄트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반전극의 최대 기여자로 기억됐다. <로망스>의 윤희도 그 눈빛을 놓지 않는다. 짙어진 사랑만큼 슬픔의 빛이 흥건해졌다는 정도의 차이뿐.
배역 뒤의 김지수에게 그런 연민의 빛이 가득하지 않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유지태, 엄지원과 촬영 중인 <가을로>에서나, 한석규의 짝이 되는 <미열>에서 여전히 멜로의 기둥이긴 해도, ‘멜로의 여왕’이란 수식어로 현실의 그녀를 만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부족할 정도가 아니라 대화의 시선을 맞추기가 오히려 곤란해진다. “나, 그 사람 사랑해요”라고 참고 참았다가 최후의 순간에 터뜨리는 윤희나 “저… 나랑 식사할래요?”라고 에둘러 말하는 정혜는 그녀에게 없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말없이 드러내는 저 재주가 우아한 광대임을 증명한다.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지 슬픔이 증발된 메마른 영혼이란 뜻은 아니니 오해는 말자.
약속 3시간 전, 컨닝 삼아 들어가본 그녀의 블로그에서 ‘격렬한’ 글을 만났다. ‘어이가 없다’라거나 ‘제가 상처받을 일은 없어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거니까’ 같은 문투에 감정이 역력하다. 무슨 일일까, 글 올린 시각이 1시간도 안 됐는데 촬영과 인터뷰에 지장은 없는 걸까. ‘미국이란 나라가 진짜 싫다. 가장 이기적인 나라다.’ 스크린쿼터와 관련해 블로그의 다른 글 한 자락에 걸쳐놓은 것이 사단이었다. 찬반 갈리는 수많은 댓글이 문제가 아니라 블로그에 개인적 느낌 그대로 올려놓은 글과 사진을 퍼다가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내보내는 미디어에 대한 흥분이었다.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이래서야 대중과의 솔직한 소통이 가능하겠냐는 원망이었다. ‘김지수답네’라고 통쾌해하면서도, 섬세함이 요구되는 표지 촬영에 작금의 상황이 행여 지장을 줄까 걱정스러웠다. 걱정은 걱정일 뿐이다. 도대체 그 눈빛은 어디 숨었다가 툭툭 뛰어나오는 걸까. 짧은 시간, 상투적인 질문에 쏟아놓는 폭포수 같은 말들보다 그 말에 담긴 솔직함의 강도가 반가움을 넘어 난처할 정도다. 그 느낌을 간접적이나마 전달하는 건 이 방법뿐인 듯싶다.
“<로망스>의 윤희는, 배우 입장에선 다르다고 보지만, 사람들은 정혜의 연장선에서 슬프게만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전형적이거나 전통적인 캐릭터는 자제하려고해요. 덧칠을 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가을로>와 <미열>을 연이어 하니까 의도적으로 멜로만 하는 것 아니냐, 영화 늦게 시작했으니 미친 듯이 달리는구나, 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가을로>는 시나리오를 너무 잘 읽었고, <미열>은 한석규 선배와 일해보고 싶던 차라 선택했어요. <로망스>도 그렇지만 세 작품 모두 아직 보지 않았잖아요. 이 영화들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어요. 평가의 기준은 어차피 다른 데다 제 것엔 인색한 편이거든요. <여자, 정혜>에 좋은 말들이 쏟아질 때 하도 무덤덤해하니까 이윤기 감독님이 ‘사람이 왜 그래’ 하고 섭섭해할 정도였어요. 사실 심각한 병 같아요. 좋으면 단순하게 즐겨야 하는데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 뒤에 안 좋은 일이 올 수 있다는 걸 많이 겪다보니 자꾸 누르게 돼요. 지난 연말 청룡영화상에서 상 받고 이틀 뒤에 똘이(?)가 죽었어요. 7년을 같이 살았으니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그리고 이틀 뒤에 대한민국 영화상에서 또 상 받았는데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블로그에서 똘이 안부 묻는 분들이 많은데 차마 답을 못하겠어요. 죽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가봐요(그녀의 블로그 제목은 ‘똘이 엄마…지수네집’이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좋은 일 생기면 어떨 땐 두렵고, 나쁜 일 생기면 차라리 맘이 편하고.
대중한테 주고 싶은 이미지는… 없어요. 진짜. 이런저런 수식어들이 따라다니지만 다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요. 막 시작하는 어린 배우는 어떤 수식어를 꿈꾸기도 하겠지만. 솔직히 그런 수식어 때문에 자주 갇히는 느낌이에요.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고맙지만 잘 보이기 위해서 뭘 의식적으로 하는 건 우습지 않나요? 제가 현모양처형 여자는 아니지만 여자로서 갖게 되는 행복감이 더 소중해 보여요. 배우가 곱게 자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일정 부분 동의해요. 곡절 많은 다양한 감정을 잠재적으로 담고 있으면 연기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배우가 나이 먹어가면서 개인의 삶이 행복해져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올 듯 싶어요. 특히 여자 배우의 삶이 센데 그럴수록 더욱더.
박찬욱 감독님이 <TV, 책을 말하다>에서 딸에게 벌써 체념과 포기를 가르친다는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공감했다니까요. 세상은 되는 일보다 안 되는 게 더 많잖아요. 박 감독님 가훈이 ‘아님 말고’라고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 <여자, 정혜> 때 늦게 영화 시작하는 거니까 목숨 걸고 해야 한다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사실 본인만큼 우려와 걱정이 되겠어요? 해보고 아님 말고죠. 해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가장 힘들 때 큰 위로가 되는 건 남자친구보다 책이에요. 모든 괴로움은 결국 자기가 극복해야 하잖아요. 연기도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자기가 터득해야 하잖아요. 연기자로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마음을 다 잡게 해준 게 책이었어요. 그때 유난히 불교 지도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달라이 라마, 라즈니쉬, 법정 스님…. 결국 인생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거고, 욕망과 욕심이 무의미한 건데…. 나이에 대한 두려움도 이젠 없어졌어요. 나이 들면서 자꾸 욕심을 드러내는 게 보기 싫더라고요. 어릴 땐 그게 예뻐보이잖아요. 물론 욕심도 질투도 미움도 없이 살 수는 없지만, 내 안에 다 있지만요. 나이 들면서 예쁜 역할은 점점 더 멀어지겠지만 갇혀 있지 않고 맘 편히 많은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