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톱스타들과 홍콩의 톱클래스 감독이 힘을 모으면 어떤 모양새의 영화가 될까. 정우성, 전지현, 이성재가 출연하고 <무간도> 시리즈로 유명한 홍콩 유위강 감독이 연출한 <데이지>가 3월6일 메가박스에서 첫 모습을 드러냈다. 명백히 아시아 시장, 나아가 그 너머의 시장까지를 겨냥하는 이 영화는 특정한 문화나 언어적 뉘앙스를 배제해 보편성을 확보하려 한 멜로드라마다.
아시아계 범죄조직의 킬러로 고용된 박의(정우성)는 암스테르담에서 첫 살인을 하게 된다. 그의 피폐한 내면을 위안해준 건 데이지 꽃밭을 그리는 한 화가 혜영(전지현)이다. 박의는 자신의 은신처 주변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는 혜영의 모습에서 야릇한 사랑의 향기를 느낀다. 어느날 운하 사이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던 혜영은 발을 헛디뎌 화구가방을 물에 빠뜨린다. 박의는 다리를 수리해 그 위에 가방을 걸어두고, 자신을 향한 마음을 감지한 혜영은 답례로 데이지 꽃밭 그림을 놓아둔다. 하지만, 킬러인 자신과 가까이 하게 되면 혜영이 불행해질 것을 아는 박의는 선뜻 그녀 앞에 나서지 못한다. 박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 표현은 매일 4시15분 데이지 꽃 화분을 혜영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데이지 꽃 화분을 든 인터폴 형사 정우(이성재)가 혜영 앞에 나타나면서 세사람 사이의 엇갈리는 사랑이 시작된다.
<데이지>는 ‘숨겨진 사랑’이라는 데이지의 꽃말을 모티브로 삼는다. 데이지는 혜영에게 직접 다가갈 수 없는 박의의 사랑을 상징할 뿐 아니라, 혜영에 대한 정우의 감정 또한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아시아계 범죄조직을 감시하던 정우는 그들의 소굴이 잘 보이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혜영의 이젤 앞에 앉았을 뿐이지만, 혜영은 정우가 그동안 자신을 아껴줬던 미지의 남자라고 생각한다. 만남이 거듭되면서 혜영을 사랑하게 된 정우는 자신이 그 남자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는 박의의 마음은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제 이 삼각관계에 범죄조직 대 인터폴이 대립구도가 얽히면서 세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충돌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데이지>는 아시아의 최고 ‘플레이어’들이 결합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많다. 내러티브는 그리 새로운 구석이 없으며 느슨하다. 사랑의 오해가 싹트고 그 꼬인 감정이 격앙되는 과정은 비약이 다소 많은 편이며, 세 사람의 멜로드라마라는 축과 범죄조직 대 인터폴의 대결이라는 축의 결합 또한 매끄럽지 않다. 이야기의 진행을 대부분 내레이션에 의존한다는 점 또한 긴장감을 늦추는 데 일조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데이지>에서 세계시장을 향한 아시아 영화계의 융합이라는 의의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암스테르담과 네덜란드 전원의 풍경은 영화 전편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