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다음 주에 개봉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단순히 영화라기보다 미국 현실의 단면이거나 리안 감독이 제안하듯 할리우드의 ‘마지막 신천지’를 개척하려는 교두보일지도 모른다. 편리하게 ‘동성애 서부극’으로 불려지는 리안의 영화가 진정한 문제작일까 아니면 단지 부풀려진 안개에 불과할까?
미디어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듯이 <브로크백 마운틴>은 1997년 <뉴요커>에 실렸던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을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와 에니스 델 마(히스 레저)가 서로의 비극적 사랑이 돼버린 미국 서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변형되었다. 벌써 <드러지 리포트>는 작가가 한번도 동성애 카우보이를 만난 적이 없으며, 와이오밍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매튜 세퍼드(와이오밍주에서 1998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된 21살의 청년 - 역주)의 고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초를 쳐댔다. 8년이나 묵혀 있던 (서부극 전문작가인 래리 맥머트리와 다이애나 오사나가 쓴) 시나리오를 마침내 지원하게 된 포커스사는 명성있는 문화적 전사들이 영화를 적그리스도나, 아니면 적어도 적 멜 깁슨의 표현이라고 중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신경질적인 반응은 도움이 될 뿐이다. 몽롱하게 펼쳐지는 오프닝 장면에서 궁극적인 아픔이 느껴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리안은 이야기를 범우주적인 로맨스로 만들어낸다. 하긴 <타이타닉> 이후 할리우드영화 가운데 <브로크백 마운틴>이 가장 정통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아픔
한여름 , 말수 많은 잭과 과묵한 에니스는 성질 고약한 주인의 양떼를 돌보도록 고용된다. 완전히 소년을 위한 에덴동산처럼 국립공원 같은 경치에 (이곳은 캐나다 앨버타다) 별이 빛나는 밤 텐트를 치고 캠핑 생활을 하는데, 어느 추운 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어쩌다 모든 일이 벌어진다. 둘은 싸우듯이 성교를 하고, 하필 그날 밤 코요테가 양을 한 마리 사냥해가며, 얼마 뒤 주인(랜디 퀘이드)은 둘이 서로 씨름 장난하는 걸 몰래 숨어서 보게 된다.
마지막 다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작별의 유감, 그리고 일상으로의 모험. 에니스는 아내(미셸 윌리엄스)를 얻고, 잭은 성적으로 적극적이고 부유한 가족을 둔 매력적인 카우걸(앤 해서웨이)을 만난다. 둘은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둘은 가슴을 졸이며 만나고 쌓아올린 모래성 같은 삶을 팽개쳐버린 채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자신들을 맡긴다. 가까운 모텔로 서둘러 떠나는 이들의 뒤에서 에니스의 여린 처는 말없이 흐느낀다.
사춘기 소년 역을 그만두고 여기서 야생마를 타는 카우보이로 나오며, <자헤드>에선 전투를 경험한 해병대원 역을 연기한 질렌할은 양성적은 아닐지라도 (상대적으로) 감수성있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기의 남자 스타들을 연상시키는데, 물론 <브로크백 마운틴>은 분명히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빠져 몽롱한 질렌할이 등식의 반을 겨우 지탱하고 있다면 독자적인 레저의 억제와 무섭고 서글픈 불운한 분노야말로 이 영화를 끌어가는 원동력이다(13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든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가 오스카상을 받으려면 돈을 확실히 벌어들여야겠지만 레저와, 실제로 레저의 아이를 낳은 윌리엄스는 쉽게 후보로 거명될 것이다).
특히 여자가 안 나오는 서부영화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갖춘다. 이걸 다들 알고 있으니 앤디 워홀의 우스꽝스러운 디스코 서부극 <Lonesome Cowboy>는 말할 것도 없고 좀더 상투적인 할리우드 유사품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포함해 <The Wild Rovers>와 <The Hired Hand> 같은 70년대 초기 서부극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주제가, 말수 없는 에니스와 토끼눈을 한 잭 사이의 진정한 카우보이 사랑으로 응결되는 것이다(<미디나잇 카우보이>가 얼마나 상투적인가 하니 동성애 패션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공 조 벅이 “존 웨인이 동성애자라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라고 외치기까지 한다).
여느 리안의 영화처럼, 가득한 말보로 카우보이들의 이미지와 의미심장한 침묵으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30분 정도 너무 길다. 감독은 매년 거듭되는 ‘낚시 여행’에서 연민의 감정을 쥐어 짜내고 있지만, 이들의 첫 해후와 추수감사절 장면을 제외하고 정말 눈물나게 하는 순간은 비참한 에니스가 잭의 부모를 방문해 자신의 생을 회상할 때다.
섹스 장면이 야하다지만 마돈나만큼 충격을 줬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두루 고상하게 표현되었고 정작 영화에서 표현되는 정열보다 응징하는 사회질서에서 느껴지는 고독이 더 강렬하다. 미국인들이 즐거이 ‘신이 내린 땅’ 이라고 부르는 광할한 대지에 비해 옷장은 더없이 잔인하게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