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카드빚, 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현실에 포박당한 청춘의 우울한 초상화 <마이 제너레이션>(2004)으로 주목받았던 노동석(33) 감독이 다시 ‘청춘’을 이야기한다. 지난 1월부터 서울 강북 일대에서 촬영을 해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청년필름 제작)은 <마이 제너레이션>의 주인공들보다 물기 많은 이십대 초반, 두 남자의 우정과 에너지, 상처를 그리는 영화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 <플란더스의 개>(봉준호 감독)에서 주요 공간으로 등장했던 넓고 괴괴한 장소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짜 총 살 돈을 모으는 종대(유아인)의 지하 ‘사무실’에 종대를 동생처럼 아끼는 기수(김병석)가 찾아왔다. 기수 옆에는 무책임한 형이 떠맡기고 간 조카 아이가 있다. 지루한 듯 무기력한 듯 시간을 보내던 세 사람은 꼬마의 발동으로 잠시 신나게 춤을 춘다. 현실의 어두움과 젊음의 눈부심이 충돌하는 순간, 에이치디 카메라는 이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순간이 발휘하는 광채를 노란색의 따스한 온기로 잡아낸다.
‘원조청춘’ 최재성씨도 출연 , 군기반장 구실 작업 ‘착착’
<보니 앤 클라이드>의 한국개봉 제목에서 따온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꿈과 희망’으로 들썩거리는 청춘영화도 아니지만 감독의 전작 보다는 여러모로 활기가 넘친다. 성인이라기 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종대의 캐릭터가 그렇고 이야기에도 멜로와 누아르 등 장르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돼있다. 특히 형제 같고, 친구 같고, 때로는 그 이상처럼 느껴지는 기수와 종대의 가슴 짠한 ‘우정’이 답답한 현실이라는 배경에 숨통을 틔워준다. 노 감독은 “<마이 제너레이션>이 정작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아이들에게 외면당했다는 아쉬움이 있어, 이 영화는 그 아이들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말했다. 그래서 쉬운 화법을 썼고 그는 이 작품이 “영화제에서 칭찬받기 보다는 10대 친구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영화로 완성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노 감독은 ‘청춘’이라는 말이 좋아 두 영화를 연작처럼 구상했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복귀한 김사장 역의 최재성씨도 그가 젊은 시절 까치역을 연기할 때 가지고 있던 ‘청춘’의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하게 됐다고. 영화의 내용 뿐 아니라 일하는 스태프들도 풋풋한 청춘들이 중심인 이 영화에서 최씨는 ‘본의 아닌’ 군기 반장이 돼 작업의 속도를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게 노 감독의 귀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에이치디 장편 영화 지원작 공모에 당선돼 3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3월 말 촬영을 끝내고 올 가을 쯤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