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곱 번째 영화 <청춘만화> 개봉 앞둔 팝콘필름 한성구 대표
2006-03-10
글 : 오정연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노는 거, 자는 거 진짜 좋아하는데, 요즘 상상도 못할 만큼 일이 많아서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 한숨섞인 하소연이 아니다.

팝콘필름의 한성구 대표는 일이 많아서 절로 흥이 난다는 표정이다. 팝콘필름의 일곱 번째 영화 <청춘만화>가 3월23일 개봉을 앞둔 때문인가 싶지만 그것도 아니다. 영화투자회사인 팝콘컴퍼니, 매니지먼트사인 팝콘매니지먼트까지 책임지고 있는 그는, 지난 1월9일 팝콘필름이 코스닥기업인 트루윈테크놀로지에 인수되어 코스닥 상장기업이 되었음을 알렸다. 영화제작과 투자, 매니지먼트, 드라마 제작에 IT기업인 트루윈의 기존 사업까지 관여해야 하는 그의 일과가 얼마나 바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들되, 영화를 동경하거나 꿈꿔본 적이 없는 특이한 경력의 한성구 대표는, 자신이 모르는 일을 하나씩 익히며 조율해나가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현재 팝콘필름과 팝콘컴퍼니는 6명의 이사를 포함하여 8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 친구,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선배 등을 이사로 포진시킨 한성구 대표는 함께 작업했던 감독, 배우들과 오랜 관계를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초 팝콘컴퍼니와 함께 팝콘매니지먼트를 설립했을 때의 소속 배우들도 김하늘(<령>), 이성재(<신석기 블루스>), 김남진(<연애소설>) 등 한차례 호흡을 맞췄던 이들이었다. 팝콘은 올해 <청춘만화> 이후 이정철 감독의 미스터리 멜로 <인연>, 김태경 감독의 멜로영화를 제작하고, 김정권 감독의 <바보>를 포함한 세편의 영화를 투자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행보를 밝히는 그의 목소리가 밝다.

-<청춘만화> 개봉이 코앞이다.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나.
=더이상 영화에 대해 기대는 안 하려고 한다.

-<야수>의 예상 밖 고전 때문인가.
=한방에 대한 욕심이 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선배님들이 떠올랐다.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나 명필름 이은 대표 등등. 사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상처를 받을 만한 기회가 없었다. 예산이 50억원을 초과하는 대작도 <야수>가 처음이었다. 아직 정산은 안 했지만 모든 수익을 합치면 이익이 조금은 남았을 거다.

-한국 최종 스코어가 100만명을 겨우 넘긴 수준이라던데. 결과에 대해서 내부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를 내렸나.
=<왕의 남자>가 있었다지만, 절대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관객과의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누아르를 좋아했던 까닭에 그쪽으로 많이 갔던 모양이다. 후회는 없다. (권)상우, (유)지태랑 개봉 2주차에 지방 무대인사를 돌 때 얘기했다. 나에게 이 영화는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영화라고.

-배우들과 관계도 돈독하고, 캐스팅에 유난히 강점을 지닌 것 같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영화는 전부 스타 캐스팅에 의존해왔다. 그건 일종의 안전장치와도 같다. 어떤 분들은 왜 항상 스타만 캐스팅하냐는 말씀도 하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캐스팅 역시 굉장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원래 배우들과 관계를 잘 맺는 편이다. 작업했던 친구들 대부분 한편에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간다. <야수>의 권상우, <령>의 김하늘, 지금 투자하고 있는 <바보>의 차태현 등. 원래 사람을 좋아해서, 굳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도 주위 사람들을 많이 챙기는 편이다.

-<청춘만화>의 제작비가 35억원 정도인데, 권상우에게 출연료를 상당하게 지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이 줬다. <야수> 캐스팅을 워낙 오래전에 했는데 당시에는 권상우가 한류스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한류 스타가 돼버린 거다. 그래서 중간에 개런티를 올려줬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일본에 40억원 정도에 <야수>를 판매했는데, 그건 상우의 몫이 컸다. 거기에 대해서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청춘만화>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고, 그만큼 대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업계 최고 수준으로 대우하겠다고 말했다. “너보다 많이 받는 배우가 나오지 않는 선에서 해줄 수 있다”고. 이후 <청춘만화>는 일본에 50억원 정도에 팔렸다.

-전속 감독까지 있을 정도로 감독과 한번 맺은 인연도 오래간다.
=<령>의 김태경 감독, <가족>의 이정철 감독, <연애소설> <청춘만화>의 이한 감독, <편지>의 김정권 감독 등이 있다. 일단 서로 신뢰, 믿음이 있다. 능력이나 전작보다도 사람 그 자체를 본다. 나하고의 궁합이 중요하다. 전속 계약서 같은 건 당연히 없다. 근데 모두 여기서 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더라. (웃음)

-이정철, 김정권 감독은 같이 작업한 적이 없지 않나.
=이정철 감독은 우리 회사에서 <가족>을 준비했다. 대본은 좋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밖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 채 헤어졌다. <야수>의 김성수 감독도 작업하기 전 4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

-<청춘만화>에 대해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많이들 비교한다.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기획했나.
=전혀 다른 영화다. 처음부터 우리 회사에서 기획한 것도 아니었다. 이한 감독이 나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가져오긴 했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고, 좀더 상업적일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었다. “이건 형이 안 하면 안 된다”면서, 다시 나에게 오기까지 1년 정도가 걸렸다. 권상우, 김하늘 캐스팅도 따로 이루어졌다. 둘 다 캐스팅 일순위였는데 상우는 <야수>할 때부터 계속해서 얘기를 해왔다.

-김하늘은 소속배우여서 캐스팅이 쉬웠겠다.
=그런 건 아니다. 본인 생각이 제일 우선이다. 물론 배우가 하고 싶다는 것이 상업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위험해 보이면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늘이는 워낙 조리가 있고 사고가 깊어서, 내가 뭔 얘기를 해도 잘 안 된다.

-매니지먼트 사업을 시작할 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
=처음 이성재가 우리 회사 들어올 때는 그냥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이왕 할 거면 체계적으로 회사를 만들어서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근데 매니지먼트라는 게 참 어렵다. 규모를 키우는 건, 계획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이 업계에 들어온 것도 매니저가 되고 싶어서였으니까 매니지먼트 회사는 오랜 꿈이었다.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서 처음 가려고 했던 게 스타서치라는 매니지먼트사였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그냥 멋있어 보였다. 차인표 매니저도 잠깐 했는데 재미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나.
=유타 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했는데 답이 없더라. 돌아와서 LG애드에 공채로 들어가서 2년간 일했다. 그리고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가고 싶어서 예전에 원서를 냈다가 거절당한 스타서치에 사장으로 있던 분을 찾아갔는데, 그분이 그때는 드림서치라는 영화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거기서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나.
=<체인지>의 프로듀서였다. 처음에는 기획만 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이진석 감독도 방송국 PD 출신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제작실장이 따로 있었는데 영화계가 워낙 보수적인 곳이라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더라. 그래서 책을 많이 봤다. 미국에서 프로듀서들이 보는 원서를 사서 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우리나라 상황에서 도움이 되나. 도움이 됐던 건 예산관리 시스템 정도. 미국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보니까 예산을 관리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더라. 하나 만들어서 지금도 쓰고 있다. 이론은 그렇다쳐도 문제는 실무였다. 현장가면 늘 무시당하고. 처음엔 적응하려고 물 떠오고 먹을 것 사오면서 궂은일을 많이 했다. 어쨌든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서 돈으로 협박도 많이 했다. (웃음) 그렇게 한 작품을 한 게 엄청난 도움이 됐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젠 영화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생각하고 거길 나왔다. 회사 차릴 돈은 없어 다른 회사에서 <짱>을 기획했다. 그리고 2000년에 팝콘필름을 만들었다.

-어릴 적 꿈은 뭐였나.
=사업가. 미국에 가서도 나중에 사업을 할 생각으로 골프를 배울 정도였다. 또래 중에 골프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때였다. 근데 거기서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선수에게 레슨을 받았다. 지금도 골프는 자주 치고, 잘 친다. 사업하는 데 그만큼 좋은 게 없다. 잘 치니까 어려도 무시 안 당하고.

-사업 중에서도 영화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광고회사에서 영상 관련 일을 처음 해봤는데 굉장히 재밌더라. 영화를 원래 좋아하거나 많이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에게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고,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는데, 프로듀서가 좋은 직업 같았다.

-결국 영화는 당신에게 사업의 일종인가.
=근데 그렇게 얘기하면 욕먹는다. 그게 문제다. 한국에서 영화제작하시는 분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많은데, 나랑은 배경이 달라서 조심스럽다.

-사업의 최고 목표는 더 많은 이윤이고, 영화에서 이윤을 내려면 안전한 프로젝트를 반복해야 하지 않을까. <야수>는 팝콘필름이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에 비해 돌출적인 영화였는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 이제는 그런 식의 시도는 더이상 안 하겠다는 건가.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왕의 남자>도 새로운 시도 아니었나. 관객이 꼭 한 가지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야수>처럼 내가 하고 싶고, 새로운 시도가 될 만한 영화는 앞으로도 할 거다. 하지만 당분간은 때가 아니다. 영화 시작한 지 이제 11년이고, 제작사를 차린 지는 6년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대중의 입맛이 아니라 투자자였다. 이익을 돌려줘야, 내가 영화를 계속 할 수 있고, 그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었다.

-얼마 전 트루윈이 팝콘필름을 인수하면서 우회상장을 했다. 영화를 만들기만 해선 오래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 같은 게 있었나.
=팝콘필름에서 만든 영화들이 <신석기 블루스> 전까지는 계속 흥행을 했고, 10억원 이상도 벌어봤다. 그럼에도 돈이 안 남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상장이 아니라 충분한 자금의 공급이다. 투자사들이 영화엔 투자해도 회사엔 투자하진 않는다. 결국 작업하는 영화를 두편에서 네편으로 늘리고 싶다거나 하는 식으로 회사 차원의 장기적인 계획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를 떠나서는 돈을 벌 수가 없는 것이 제작사인데도 제작만 해서는 크게 돈을 벌지 못한다.

-인수 이후 복잡한 일도 많을 것 같다.
=아직은 돈을 번 것도 아니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 희비는 앞으로 2년 안에 갈릴 것 같다. 주가가 올랐다지만 현재의 주가는 나한테 큰 의미가 없고. 내가 이처럼 사업을 크게 벌인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상상 외로 일이 많더라. 기존에 트루윈에서 하던 것이 IT사업이었고, 원래는 내가 트루윈의 대표로 취임한 뒤에는 그 사업을 떼어내버리고 영화를 하면 되겠다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법이나 절차가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 회사를 내보내는 데도 절차가 있고, 현재는 내가 그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혀 모르는 사업인데 그걸 어떻게 책임지나.
=공부도 많이 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IT 전문가를 참모로 두고 있다. 요즘 영화에 전만큼 신경을 못 쓰는 건 사실이지만 요 몇 개월간 에너지가 넘쳐나는 걸 느낀다. 진짜 사업을 하는 것 같고, 너무 재밌다.

-그러다 아예 업종을 전환해버리는 건 아닌가.
=그건 아니다. 그건 본질에서 벗어나는 거 아닌가. 지금은 영화와 관계되는 하드웨어 관련 사업을 새로 시작할까 생각 중이다.

-드라마도 제작한다고 들었다. 어떤 포석에서 시작한 일인가.
=오는 4월에 제작을 시작해서 SBS에서 방영하게 될 거다. <봄날>의 김종혁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휴먼드라마, 가족얘기를 다룬 미니시리즈다. 앞으로 트루윈을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키우고 싶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시작한 데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앞으로 드라마 프로덕션을 인수할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드라마 제작을 모르면 안 된다.

-최근 합작영화도 많이 만들어졌고, 한국 영화사가 미국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 진출은 관심없나.
=궁극적으로는 세계시장을 노리고 싶다. 올 상반기 중으로 미국에 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소니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외국 회사들과도 대등하게 어깨를 견주고 싶다.

-꼭 제작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아직은 대답할 수 없다. 그게 말로는 하기 힘들다. 지금의 목표는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이왕 시작한 일, 남에게 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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