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나이테 쌓아가는 시간, <눈부신 하루>의 이소연
2006-03-13
글 : 오정연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이소연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스펀지 같았다. 시대의 바람둥이 조원에게 사랑의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음양의 이치를 몸으로 깨치는 똘똘한 처자, 소옥. 1년 반 뒤 우리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그를 만났다. 씩씩한 파도의 기운으로 도시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섬처녀로(<깃>), 세파에 흘러다니다 맞닥뜨린 사랑을 뒤로해야 했던 술집 여자로(<봄날>). 이후 <신입사원> <결혼합시다> <봄의 왈츠> 등의 드라마에서 그는 주로 악역에 속했다. 모두가 응원하는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주연이 아니면 대부분 악역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계속 망가지고 얄미운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깃>에서처럼 순수하고 밝은 역할이 너무 하고 싶었던 시기에 <공항남녀>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소연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세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영화 <눈부신 하루> 중 민동현 감독의 <공항남녀>에 출연했다. 공항 서점 직원 고니는 언제나 실수연발이지만 의심없는 순수함을 지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 남자와 우연히 함께하게 된 하룻밤 사이, 교감에 성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반적인 액션과 리액션이 불가능한 연기가 불편했을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편하고 재밌었다”고 말한다. 일부러 상대배우의 일본어 대사를 기억하지 않고 촬영에 임했다는 그는, 언어가 없어도 진심이 있다면 교감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스캔들…> 때만 해도 순수하고 풋풋했던 것 같은데, 요즘 많이 늙은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일이 좋아서 했는데, 이제는 욕심도 생기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고민하게 된다.”

이제 스물넷, 마냥 좋아하는 일을 생각없이 할 수 있었던 시기가 그리운 나이. 드라마 촬영으로 하루 세 시간씩밖에 자지 못하는 강행군에 한결 핼쑥해진 그 얼굴을 보며,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려본다. 그것은 늙어감이 아니라 성숙을 의미한다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서투른 탓에” 조금씩 다른 캐릭터 안에 자신의 모습을 담곤 했다는 겸손함 혹은 자신감으로 미루어, 그의 깊은 눈망울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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