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연기를 종교로 믿는 남자, <앙코르>의 와킨 피닉스
2006-03-13
글 : 이다혜

와킨 피닉스를 인터뷰한 <타임>의 기자는 자연인 피닉스를 “따뜻하고 정중하며, 꽤 지루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스크린 밖의 피닉스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몇년 전, 제이 르노는 자신의 <투나이트 쇼>에 출연한 피닉스와의 인터뷰 끝에 “다음번엔 피닉스 본인이 직접 오세요”라고 투덜댔다. 토크쇼가 요구하는 사생활 노출이나 개인사 고백에 그가 유독 인색하기 때문이다. 특히 형 리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는 가면 같은 정중함 뒤로 물러선다. 와킨 피닉스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가장 인상 깊은 최초의 순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1993년 10월31일, 형 리버 피닉스가 LA의 클럽 ‘바이퍼 룸’ 앞에서 약물과용으로 쓰러졌을 때 함께 있던 그는 응급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911에 전화를 건 초조한 그의 음성은 전세계에 퍼졌다. 그는 오랫동안 형의 그늘 아래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연기에서 리버 피닉스의 그림자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그는 세간의 호기심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죽은 형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

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피닉스지만, 그가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들에서 그는 인상적인 조연에 머물렀다. 기꺼이. “사람들이 나를 모를수록 좋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남편을 죽이려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살인을 저지르는 지미를 연기한 <투 다이 포>와 황제를 살해하고 왕위를 넘겨받은 황제 코모두스를 연기한 <글래디에이터>에서 그는 주인공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 두 영화들은 그에게 골든 글로브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을 안긴 <앙코르>를 선사했다. 실존 뮤지션 조니 캐시의 삶과 노래를 그린 <앙코르>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그 두 영화의 와킨 피닉스를 기억했다. 피닉스는 캐시보다 15cm 정도 작고 얼굴선도 더 곱기 때문에 둘의 유사점은 외모에 있는 게 아니었다. 와킨 피닉스가 “제임스 딘처럼 극도의 불안함과 남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니 캐시가 그랬듯이.

피닉스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리뷰 기사를 읽지 않는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는 것도 꺼린다.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는 나의 전작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잘못을 고쳐가며 살고 싶다.” 영화에 몰입하기 위해 “일할 때는 내 삶을 포기한다. 절대 평상시에 입는 옷을 입거나 보통 때 듣던 음악을 듣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과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의 연기관은 완벽주의가 아니라 맹목적인 종교에 가깝다. <앙코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폴섬 교도소 공연 장면을 찍을 때, 와킨 피닉스는 스탭에게 간수가 되어 보조출연자들을 가두라고 지시했다. 죄수를 연기하는 보조출연자들이 먹거나,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라고. 장면에 필요한 긴장감을 위해서였다. 보조출연자들만 못살게 굴 리가 없다. <글래디에이터>를 찍던 당시, 밤장면을 앞둔 피닉스는 “감정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촬영을 거부했다. 참다 못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피닉스의 의자를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이런 망할! 니 일은 해야 할 것 아냐!” 어쩔 수 없었다. “역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는 그는 진심이 아닌 연기를 할 줄 몰랐다.

<앙코르>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연기뿐만이 아니었다. 노래를 하고 기타를 치고, 캐시의 저음으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피닉스는 조니 캐시의 음악만을 들었으며, 그의 자서전과 인터뷰만을 읽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노래를 만드는 느낌을 알기 위해 직접 작곡도 해봤다. “나는 진실만이 끌어낼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캐시 역을 하면서 나는 캐시와 똑같이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난 그가 노래를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영화에 몰두하는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역할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세계에 더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뭘 하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내 삶은 어디 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외로워진다.”

<앙코르>를 마친 뒤, 그는 알코올중독재활시설에 들어갔다. 형 리버가 죽은 방식 때문에 호사가들은 그 사건에 운명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피닉스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극적인 사건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단순하다. 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술을 마시며 긴장을 푸는 것에 신경을 쓴 것뿐이다. 술을 주지 않는 컨트리클럽에 간 것에 불과했는데.”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았고, 지난 1월26일에 있었던 교통사고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그는 대답 대신 다음 영화를 들고 돌아올 것이다. 그게 와킨 피닉스가 아는 유일한 삶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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