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영화 한편, 그까이거? 대충 씹을 일 아니구먼
2006-03-16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1년이면 80여편의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된다. 장편 상업영화 얘기다. 극장개봉과 거리가 먼 단편 내지는 독립영화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영화가 이렇게 흔하니, ‘까짓거, 뭐 그냥 만들면 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고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7일 언론시사회를 마친 <모두들, 괜찮아요?>(24일 개봉)를 보면 영화 ‘한 편’을 만들고 감독이 되기까지 거치기 십상인 인고의 과정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남선호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10여년을 절치부심한 끝에 영화를 만들게 된 남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친구들이 철밥통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방 구석에 틀어박혀 1.85:1 (영화화면)비율로 메모지를 오려가면서 ‘영화적 상상력’ 운운하며 궁상을 떨었다. 물론 그런 그 역시 영특한 아들도 낳고 치매 걸린 장인도 모시고 사람 구실하며 살기는 했다. 하지만 아내 덕이다. 10년 사이, 전도유망한 무용가였던 그의 아내는 일상에 지친 억척스런 무용학원 강사가 됐다.

또 이번주 <씨네21>(544호)에 실린 이종도 기자의 ‘나의 영화연출원정기’를 보면, 여차저차 영화를 만들게 돼도 그 과정 역시 피말리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씨네21>에서 영화기자를 하면서 수많은 영화를 뜯어보고 비평했던 그였지만, 영화제작학교 수업작인 단편영화 한 편 찍는 것조차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빠듯한 예산과 촬영일정은 물론이고, 시나리오·촬영·편집 전 과정에서 곳곳이 지뢰밭이다. ‘내 작품’이라는 말을 쓰다 ‘내 쓰레기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읍소성 덧글을 붙인 것을 읽고 나니, 웃음과 함께 가슴 한 켠이 짠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성공적으로 데뷔를 했다고 치자. 그래서 아흔아홉편의 영화를 만들고 칸에서 감독상까지 받았다고 치자. 그래도 한국 영화판에서 영화 한 편 만들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1일 임권택 감독의 백번째 영화 <천년학>이 촬영현장을 공개하며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임 감독은 크랭크 인을 앞두고 투자사의 투자철회와 제작사의 제작포기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새로운 제작·투자사를 찾았지만 주연 배우를 스타급으로 교체한 뒤에야 백번째 영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니체는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한 부류의 인간은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다. 영화를 기준으로 두고 이 분류를 따르자면 영화감독은 남선호 감독 처럼 어쨌든 자기 길을 가는 인간에 속한다. 감독들은, 생초보 이종도 감독처럼 경험이 부족했건 아니면 경험은 물론 능력까지 넘치는 경우에도, 피말리는 작업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또 임권택 감독처럼 거장이 된 후에도, 종종 영화산업의 논리와 충돌하며 힘겹게 자기 길을 재촉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나기도 했다.

니체의 두 번째 부류 인간은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며 사는 인간’이다. 평론가나 기자는 남에 대해 ‘말하며 사는’ 걸 직업으로 택한 이들이다. 그런 만큼 냉정해질 수밖에 없지만, 냉정해진다는 것과 가볍게 본다는 건 다른 말일 터. 기자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애정 어린 비판’이라는 게 ‘악어의 눈물’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되새겨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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