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MBC <느낌표> ‘산넘고 물건너‘ 촬영현장
2006-03-16
글 : 남지은 (<한겨레> 기자)
사진 : 정용일 (<한겨레21> 선임기자)
진료 손길에 정 ‘한사발‘ “가지말고 내랑 살자”

서울에서 안동만 해도 지척이다. 봉화, 예천을 지나 험한 물길, 산길 다 넘은 끝에 영양군에 도착했다. 지난 9일, ‘산넘고 물건너’의 촬영진을 따라 경상북도 석보면 옥계2리의 마을회관 앞에 섰다. 맨처음 반갑게 나와 맞는 이는 제작진이 “무료 진료를 해드리겠다”며 전화를 했을 때 “그거 사기 아닌가, 참말인가?”고 되물었다던 김계현 이장이다.

험한 산길 물길 끝에 도착한 영양
처음엔 ‘무료진료’ 안 믿던 노인들
의료진 헌신과 연예인들 애교에
집집마다 한상 내놓고 손 못 놓아

문화방송 <느낌표>의 한 코너 ‘산넘고 물건너’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오지를 찾아 노인들의 건강을 검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김유곤 피디와 제작진은 작년 11월 <한겨레>에서 연재한 ‘고령화시대 건강보험’ 기획 기사를 보고 우리나라도 노인 의료가 사회문제로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게 됐다. “청년들의 건강도 국민의료보험으로 감당하지 못하는데, 돈없고 도시처럼 혜택도 받지 못하는 농촌 노인들의 건강문제는 당장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 피디는 우선 농촌 노인들을 돌아보는 ‘산넘고 물건너’를 기획했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큰 호응을 얻어 1월 7일 방송 첫날부터 시청자 게시판이 감동적인 시청 소감으로 가득찬 것은 물론, 인기 연예인들의 출연 자청이 줄을 섰다. 이 날도 가수 이효리가 초대 손님으로 함께 내려왔다. 이효리는 “평소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며 “직접 가서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드리고 싶었다”고 출연이유를 말했다.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 제작진이 바쁘게 움직인다. 최석경, 강지나 작가는 3일 전부터 내려와서 마을을 익히고, 진료와 방송일정을 정해둔 참이었다. 의료진도 미리 내려가 혈액 검사를 한다. 혹 심각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도착한 10여명의 의료진은 마을 회관에 자리를 잡고 주민들을 진료했다. 보통 하루에 60명 정도를 진찰해야 하기에 손놀림도 종합병원 응급실 못지않게 바쁘지만, 갖고 있는 장비도 종합 병원 수준이다. 진료 책임을 맡은 경희의료원 오승준 교수는 “제대로 검진과 예방을 하려면 좀더 좋은 의료기기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을 위해 이미 3억원에 달하는 초음파 기계를 샀고, 4월엔 디알(D-R)이라는 최첨단 디지털엑스레이기계도 들여올 예정이다. 오랫동안 병을 방치해온 탓에 만성질환이 된 노인들이 많아 사후관리를 위해 ‘건강이질보고서’도 만들 계획이다. 김유곤 피디는 “6개월 방송하면 20개 마을을 가니 이를 모으면 ‘농촌 건강 보고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껏 정부에서도 만들지 못했던 자료를 지역병원이나 보건소에 넘겨주어 노인들의 건강관리를 돕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진료가 계속되는 동안 진행자 김제동과 이윤석, 초대 손님 이효리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36가구, 80명 남짓한 주민이 사는 산 아래 작은 마을 옥계리에 돌연 활기가 넘친다. 찾는 집마다 집안 최고의 음식들이 쏟아진다. 이순희 할머니도 이들이 들어서자마자 주안상부터 내민다. 귤과 소주가 전부지만 그 마음을 아는 김제동이 넙죽 받아 한숨에 들이켠다. “우리 아들 딸 했으면 좋겠구만. 안가고 여기서 살면 안 되남.” 할머니는 오늘 하루 딸과 아들로 삼은 이효리와 이윤석을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이윤석은 “몸은 힘들지만 진심으로 대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너무 좋다”며 눈물을 글썽이고, 검은 재킷을 차려입었던 이효리는 어느새 점퍼를 걸쳐입고 함께 앉아 비빔밥을 비빈다.

순박한 사람들 덕에 함께 오는 스타들도 따뜻한 마음을 안고 돌아간다. 하루종일 일정을 비우고 찾아왔는데 ‘대접’이 아닌 ‘홀대’받기도 일쑤다. 봉태규도 ’방태기’가 되고 오승현은 ‘외국인’이 된다. 오늘의 게스트 이효리도 ‘요리’가 됐다가 ‘허리’가 되고, 직업도 ‘제동이 여자친구’란다. “처음엔 거리를 두던 스타들도 촬영하면서 천사가 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의 순수함에 동화된다”는 김 피디의 말처럼, 마을의 환경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배우 봉태규는 방송이 끝나고도 문병을 다녀오기도 했다.

낮 12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밤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끝이 났다. 인적 드문 마을의 잔치같던 하루도 끝났다. “이제 가면 언제 또 보노” 노인들은 벌써 외롭다. 김유곤 피디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병을 고치려 들기보단 시골에 대한 관심을 바란다”며 노인인구가 80퍼센트 이상인 이 마을의 앞날을 걱정한다. 이순희 할머니는 새로 얻은 아들과 딸들에게 속삭인다. “아무 것도 안하고 밥만 먹고 내랑 같이 살자.”

“재롱 떨랴 밥 나르랴 바쁘다 바빠”

김제동 진행자 인터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국장님을 직접 찾아뵙고 말씀까지 드렸습니다. 진료까지 해 주니 더없이 기쁩니다.” 김제동에게 ‘산넘고 물건너’는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에서 나온 구수한 입담과 노인들을 부모 대하듯 하는 모습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실은 카메라 뒤에서 하는 일이 더 많다. 밥이며 커피며 모두 직접 나른다. “사람이 그리우신 분들입니다. 내가 이야기 한마디 걸어주고, 사인하나 해주는 걸로 이렇게 기뻐하는데 이보다 더한 것도 해드려야죠” 김제동은 2002년 한국방송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데뷔한 이래 2003년 문화방송 연예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각종 쇼와 예능프로그램의 인기 진행자가 됐지만, 그의 진면목은 공익프로그램에서 드러난다. 전국 각지의 노인들을 찾아다닌 <까치가 울면>, 개안수술을 도와주는 의 ‘눈을 떠요’, 해외입양아의 사연을 다루는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서민적이면서도 사람을 잡아끄는 힘을 보여주며 진행자로서 자리잡았다.

‘산넘고 물건너’를 진행하면서 “많이 해드릴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병을 너무 늦게 발견했거나 치료에 한계가 있을 때, 이분이 과연 나을 수 있을까”는 그에게 가장 두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의료 시스템은 사회적 차원에서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농촌에 살고 소득수준이 낮으니 의료 서비스 받는 게 큰 일입니다. 주기적으로 관리가 된다면 크게 되지 않을 병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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