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누가 당신을 정상인으로 만들었지?! <웨딩크래셔>
2006-03-17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투덜양, 오언 윌슨이 다시 잘생긴 속물로 돌아오길 바라며 쓰다
<웨딩크래셔>

하이, 오언.

<웨딩크래셔> 개봉 목빠지게 기다렸던 나야. 바로 내 사랑 당신이 나오기 때문이었지. <쥬랜더>와 <로얄 테넌바움> <아이 스파이>를 보면서 당신한테 완전 감동먹었던 거 내가 고백했잖아. <스타스키와 허치>의 DVD를 산 것도 순전히 자기 때문이었고,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이 개봉 안 했을 때 땅을 치고 안타까워한 것도 순전히 달링 때문이었던 거 알지? 그러니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웨딩크래셔>를 꼽은 것도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프랫 팩이라고 불리는 네 친구들, 벤 스틸러, 잭 블랙, 빈스 본, 윌 페렐 등등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중 한명만 고르라면 난 1초도 생각 안 하고 당신을 찍었을 거라고(음, 솔직히 잭 블랙과 당신 사이에서 약간의 고민이 있긴 했는데, 잭 블랙이 키 때문에 밀렸어).

근데 나, <웨딩크래셔> 보면서 큰 결심했다. 나, 너 안 할래. 충격받지 않는다면 한마디만 할게. <웨딩크래셔> 말야, 당신 나오는 장면 빼놓고 다 재미있더라. 충격받지 않는다면 한마디만 더 할게. 에이, 이 빈스 본만도, 윌 페렐만도 못한 인간아.

뭐가 당신을 정상인으로 만든 거야? 언제부터 부잣집 둘째 사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한 거지? 왜 갑자기 베르테르라도 된 것처럼 고뇌 가득한 표정을 만면에 띄우고 팔자에 없는 장관집 휴가에 따라가서 비굴하게 이리저리 눈치를 보게 된 거지?

물론 부잣집 딸내미 사랑할 수 있다고 봐. 예쁜 여자 좋아하는 데 누가 막겠니. 그 여자가 럭셔리한 약혼자 있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일도 없지. 오히려 권장해. 그건 원래 당신들 동아리의 지조 같은 거잖아.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애당초 가능하고 말고를 따지지도 않으니까. 그런 불굴의 투지가 있었기 때문에 너네 동아리 반장 벤 스틸러는 바지를 안 벗고도 팬티를 벗을 수 있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 아니겠어?(<쥬랜더>)

그렇다면 너는 그녀에게 좀더 저돌적으로 껄떡거렸어야지. 아니면 <로얄 테넌바움>과 <스티브 지소…>에서 처럼 도무지 뭔가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물귀신처럼 그녀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당신이 톰 크루즈야? 왜 연애 교과서에 나오는 괜찮은 남자 흉내를 내? 그리고 하나 더. 장관 부인이 네 방에 들어와서 웃도리를 홀랑 벗었을 때 움찔하는 당신의 표정을 직접 봤어야 해. 장모님 왜 이러세요 하는 얼굴이라니. 프랫 팩 동아리의 사해동포주의는 어디로 간 거니. 딸이랑 연애해, 그 엄마랑 같이 자. 그래서? 이런 게 바로 당신들, 아름답고 휴머니즘 넘치는 러브러브 판타지였잖아.

오언,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길 바라. 나 당분간 빈스 본하고 잘 지내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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