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쉬보. 짙은색 머리에 열정적인 눈빛의 청년이었던 그는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에서 건방진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지지만 여자는 아냐”라고. 그러나 이후 <쥴 앤 짐>에서의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그는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였다. 쉬보를 다시 불러낸 건 클레르 드니였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남자로 변해 <훌륭한 직업>에 등장했고, 드니는 이어 <침입자>의 주인공으로 쉬보를 택했다. 쉬보와 <침입자>의 주인공은 비슷하다. 실제로 배우가 아닌 모종의 직업에서 은퇴한 뒤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는 쉬보에게서 모든 뒷배경이 가려진 건장한 체격의 노인 분위기가 느껴진다(<작은 병정>에서 쉬보의 역할이 정보기관원이었으니 그가 노인이 되었다면 딱 루이가 아니겠는가). 심장이 좋지 않은 루이는 스위스 은행에서 거액을 찾고, (어디에선가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뒤) 부산에서 배를 구입해 남태평양의 섬으로 향한다. 드니의 전작 <낭시를 향해서>에 출연했던 철학자 장 뤽 낭시가 심장이식 경험을 쓴 글과 폴 고갱의 타히티 일기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해양소설(그중 하나를 각색한 작품으로서 이십대의 쉬보가 주연을 맡은 미완성 영화가 극중에 나온다)에서 느슨하게 영감을 얻은 <침입자>는 경계와 침입이란 드니의 주제가 복잡하게 얽힌 영화다. 모든 것이 서로 개입하는 <침입자>는 드니의 말처럼 전체적으로 침입에 관한 거대한 메타포다. 그리고 <침입자>는 죽음의 공포를 떨치지 못하는 남자가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이기도 한데, 루이와 함께 아들의 시신과 정체가 불분명한 다른 아들을 실은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침입자>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던져지듯 튀어나오는 인물과 이야기의 나열 그리고 불가사의하고 거의 야만적이기까지 한 결말 탓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현재의 결말은 원래 가운데에 위치한 것이었는데, 부산에서의 촬영(부산영상위원회가 제작에 참여했다) 도중 봄에 내리는 눈을 보았던 것을 편집과정에서 기억하면서 맨 뒤에 놓게 되었다 한다. 이처럼 일반적 구조를 뛰어넘는 대담함은 그대로 드니 영화의 독창적인 성격을 말해준다. 게다가 베니스영화제 상영 버전조차 나중에 바뀐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이니 드니의 영화세계가 완결에 이를 때까지 <침입자>와 그에 대한 해석은 계속 미완의 것으로 남을지 모른다. 영상과 소리는 예술영화의 DVD로서 최상의 것이며, 부록의 인터뷰에선 작품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가 오간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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