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뺨엔 주근깨, 가슴엔 자신감이 콕콕, <스윙걸즈>의 우에노 주리
2006-03-24
글 : 김나형
사진 : 오계옥

언니만 둘 있는 여자 아이가 있다. 언니들은 책상이 있지만, 막내는 없다. 그래도 부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책상에 앉은 언니들을 볼 때의 소감이 ‘언니들은 숙제하네?’로 끝인 걸 보니. 세상만사 걱정없는 꼬마는 방바닥을 뒹굴며 언니가 사놓은 잡지를 뒤적이다가 모델 오디션 공고를 본다. ‘어? 이거 나도 할 수 있나? 해볼까?’ 그것이 우에노 주리 경력의 시작이었다.

모델 일을 해서인지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다. 활짝 웃는 하얀 얼굴에 귀여운 주근깨가 반짝인다. “공부요? 어…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엔 열중하는 성격이거든요. 미술, 체육, 음악, 이런 건 잘했어요. 책 보고 하는 공부도 열중했으면 틀림없이 잘했을 거예요.” 하나를 물으면 재잘재잘 열 가지를 대답한다. 부끄럼없이 활달한 것이 카메라 앞에서만 그런 건 아닌가보다.

소속 사무실이 ‘영화에 출연해보면 어떠냐’고 권하여 2003년 그녀는 <칠석의 여름>으로 영화에 데뷔했다. 한·일 고교생의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첫 영화를 찍는 동안 부산까지 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녀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했다. <조제…>의 카나에는 한국 관객에게 우에노 주리의 첫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진정 카나에가 그녀였을까? 실제의 그녀를 보고 나면 카나에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의외로 느껴진다. 훨씬 나이가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 성격이 달랐다.

장차 복지 관계 일을 하는 것이 희망인 건전한 여대생.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밝지만 어색하게 웃는 그녀의 수줍음을, 남자들은 사랑한다. “착한 척하기는…. 그게 비밀 무기야. 그런 여자애가 45도로 살짝 올려다보면서 ‘너하고 할 얘기가 있어’ 하면 안 넘어갈 남자가 없지.” 츠네오의 섹스 파트너는 카나에의 속성을 정확히 집어낸다. 얌전해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여자인 인물. 츠네오가 복지과에 신청해 조제의 집을 고쳐줄 때 카나에는 그곳을 찾아온다. 이유는 ‘견학하고 싶어서’지만 속뜻은 신경쓰이는 연적의 실체를 확인하고 츠네오 곁에 건강하고 예쁜 자신이 있음을 알리려 함이다. 카나에는 “저 사람이지? 그 건강한 여자애”로 착하게 운을 뗀 뒤, “집에서 다이빙한다던 사람 말이야”라는 한마디로 조제 가슴에 못을 박는다.

“<조제…>를 찍기로 했을 때 걱정했어요. 연애 경험이 없었거든요. ‘내가 (또래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긴 한데) 이성에게도 인기가 있을까? 다른 여자에게서 남자를 뺏는다니 우악스러운 여자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이누도 잇신) 감독님이 가르쳐주셨어요. 카나에는 여성스럽고 귀엽지만 얄미운 사람이라고.”

1년 뒤 그녀는 스즈키(<스윙걸즈>)가 되었다. 시골 사투리를 쓰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거실 바닥을 뒹굴다 TV채널 때문에 동생과 승강이를 벌인다. 남의 도시락을 까먹고는 천연덕스럽게 “왜?”라는 그녀의 턱에 한알 밥풀이 붙어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님이랑 같이 있으면 저절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게 돼요. <스윙걸즈> 오디션 볼 때 제 단점을 막 얘기했는데, 감독님 말씀으론 그게 좋았대요.” 손에 잡힐 듯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카나에가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로 변한 것에 사람들은 놀랐지만, 밝고 솔직하다는 점에서 스즈키는 카나에보다 우에노 주리와 더 닮았다. 다만 두 캐릭터가 관객과 조우한 순서가 거꾸로였을 뿐이다.

우에노 주리는 항상 감독을 믿고 의지한다. 때문에 빚는 사람에 따라 카나에도 되고 스즈키도 된다. 아직 굳지 않은 어린 배우의 자재로움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유연함은 그녀가 본래 갖고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스윙걸즈> 이후 2년 동안 4편이나 되는 영화를 찍고, 얼마 전 5번째 영화 <행복한 스위치> 촬영까지 끝냈지만 그녀는 투덜거리지 않는다. “바빠지긴 했는데 스케줄 같은 건 생각 안 하고 지냈어요. ‘이제 주목받게 됐으니까 이렇게 해야만 해’ 생각하거나 스트레스받지도 않을 거예요. 여배우가 되고 싶어서 배우가 된 건 아니에요. 주변의 격려로 영화를 하게 됐고, 지금은 영화가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좋아요. 계속하고 싶어요.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냥 영화 한편 찍으면서 나도 같이 성장하는 게, 나는 그게 좋아요.”

혼자만 책상이 없으면 평생 한이 되는 보통의 막내들과는 달리 ‘책상이 없으니까 바닥은 다 내 거!’라고 했던 소녀는, 그렇게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아가씨로 자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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