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사람이 어떻게 쉽게 변하니?
2006-03-24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재미있게 봤다. 호평 못지 않게 비판적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홍상수 식’이라는 아류 냄새와 가끔씩 툭툭 튀는 치기어린 감성, 기술적인 문제 등 영화의 완성도로만 따지면 <여교수…>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왜 좋았을까 생각하다가 문소리와의 인터뷰 중간에 무릎을 쳤다. “조은숙은 나름대로 발전하는 인간이지만 제 버릇, 개 못줘요. 사람이 원래 잘 안변하잖아요.” 논리와 분석을 넘어서 <여교수…>가 꽂혔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끝까지 그 성격, 그대로 간다. 스토킹을 하는 남자는 끝까지 자기 사랑의 순결성을 믿고, 조은숙은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와중에도 말도 안되는 시를 지으며 자기 도취에 빠진다. 이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이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도 잘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가 이 영화의 주제는 아니지만 캐릭터가 유지하는 일관성만으로도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캐릭터의 일관성이란 영화 시나리오의 기본일 뿐 영화의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또 캐릭터는 일관성 못지 않게 입체성이 필요한 것이라 어떤 상황 속에서 인물은 변화할 수 있고, 이런 변화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뮌헨>에서 순진한 애국주의자였다가 자신의 애국주의를 회의하게 되는 주인공 아브너의 변화는 영화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여교수…>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의 캐릭터에 과도하게 ‘감격’한 건 너무나 쉽게 인간 개조를 시키는 영화들에 대한 반감 탓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방과 후 옥상>은 억세게 운없는 왕따 학생이라는 캐릭터만으로도 끝까지 발랄하고 재기있는 감수성을 이어갈 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데 중간에 영화는 문제학생들과의 갈등 국면에서 주인공을 갑자기 용감하고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로 탈바꿈시킨다. 비단 이 영화뿐이 아니다. 많은 영화에서 20~30년을 게으르거나 뺀질대거나 속없이 살았던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갑자기 훌륭하고 반듯한 인물로 변모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물론 사람은 어떤 계기를 통해 변하거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상황을 정교하게 만들고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을 쌓아서 반전이나 극적인 결말을 만들기보다, 성급하게 주인공을 반성시키고 갱생시킴으로써 상황을 봉합하려 한다. 나쁘게 말하면 너무 게으른 것이고 좋게 말해야 새마을 운동식의 계도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지금의 자신보다는 더 부지런해지거나 더 용감해지거나 더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 한다. 또 그렇게 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수없이 많은 변명을 하고 산다. 영화에서 내가 될 수 없는 누군가를 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일기를 쓰고 반성을 한다고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남이 어느날 갑자기 분연히 일어나 멋진 인간으로 변모한다는 이야기도 믿기지 않는다. 그 억지스런 반성과 갱생을 보는 건, 주변의 꾸지람과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억울하다는 투로 버티면서 캐릭터의 일관성을 지키고 계신 어느 국회의원을 보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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