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몰아친 지난 3월12일 남양주종합촬영소에는 유난히 바람이 거셌다. 스튜디오라고 특별히 따뜻하지 않을 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자리잡은 제3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순간, 후끈하다. 온풍의 힘이 아니라 끈끈한 밀도의 기운이다. 사형수 윤수(강동원)와 빈번한 자살 시도의 흔적이 증명하듯 생에 이렇다 할 애정이 없는 유정(이나영)이 세 번째로 만나는 교도소 ‘만남의 방’은 그 긴장감도 만만치 않은데다 공간 자체가 갑갑증을 일으킬 만큼 조밀하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배우 뒤로 대여섯명의 스탭이 움직이면 꽉 차는 규모인데다, 카메라 두대는 들고찍기로 움직이고 있으니 엿볼 구멍조차 여의치 않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스탭들의 발이 차내는 먼지조차 숨막히는 밀도에 한몫한다.
<역도산> 이후 농담 반 진담 반 “울리는 영화를 찍겠다”는 송해성 감독의 얼굴은 마스크로 반쯤 감춰져 있지만 웃음기가 역력하다. 사형제를 진한 멜로로 공박하는 공지영의 베스트셀러 원작, 굵은 상처가 죽음을 넘나드는 험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꽃 같은 배우 이나영과 강동원, 극적 감성이 뿜어져 나올 곳은 좁은 사각의 ‘만남의 방’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정적인 구도 등 난감한 여정의 한복판에 선 지휘자의 저 여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 짧은 머리에 푸른 수의를 입은 낯선 모습의 강동원도 경상도 사투리를 낮게 드리울 때 빼놓고는 장난기어린 미소를 툭툭 떨어뜨린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왜 날 만나고 싶어했는지 오늘은 꼭 대답을 들어야겠어요”라고 묻는 이나영은 자못 어른스럽다.
송해성 감독은, 공지영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사형제 폐지에 대한 원작의 수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전제했고, 강동원의 미모가 부담스러웠지만 강동원의 재발견이 될 영화가 될 것 같으며, 정적일 수밖에 없는 서사 흐름이 가장 힘들지만 핸드헬드를 차용하는 등 다른 이미지를 가져오려고 한다, 는 나름의 답을 막힘없이 쏟아냈다. 이나영, 강동원은 장면 하나하나가 도통 쉬운 게 없다면서도 끊임없는 대화와 편안한 맘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두 배우가 감독을 호텔방으로 몰고들어가 사흘 동안 시나리오를 함께 만져낸 것이 중요한 동력이 된 듯싶었다. 그렇게 지금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들의 작품은 5월 초 촬영을 마치고 올 가을 찾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