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파인즈,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콘스탄트 가드너>가 3월 27일 대한극장에서 기자시사회를 가졌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존 르 까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콘스탄트 가드너>는 런던, 베를린, 케냐를 오가며 거대 제약 회사의 음모를 파헤친다.
어디서건 바른 말을 아끼지 않는 열정적인 성격의 인권운동가 테사(레이첼 와이즈)와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온화한 외교관 저스틴(랄프 파인즈)은 완벽히 대조적인 서로의 매력에 끌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케냐 주재 영국 대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저스틴을 따라 그곳에서 살게 된 테레사는 임신 중에도 구호활동에 주력하며, 현지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척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거대 제약회사 쓰리비의 음모를 고발하려 한다. 늘 아내의 건강을 걱정하며, 복잡한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기를 원했던 저스틴은 어느 날 테레사가 강도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배후에 음모가 있음을 직감한다. 그는 테사가 뒤쫓던 제약회사의 비밀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하고, 비밀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 자신 역시 죽음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
데뷔작인 <시티 오브 갓>으로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이 영화가 제약업계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는 것, 케냐에서 찍는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스릴러적인 긴장감과 로맨스의 애틋함을 적절히 버무려놓은 영화다. 비밀을 파헤치는 저스틴의 행보는 제약회사의 부패와 잔악함을 밝혀나가는 폭로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 남자가 아내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생전에 알지 못했던 그녀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을 완성해나가는 여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는 목숨의 위협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곳곳에 아내에 대한 회상 장면을 엮어 놓는다.
다소 감상적으로 비칠수도 있는 회상 장면들이 억지스럽거나 값싸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랄프 파인즈와 레이첼 와이즈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안정된 삶을 벗어 던지고 위험에 뛰어드는 저스틴의 변신을 랄프 파인즈는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표현해냈고, <미이라>로 친숙한 레이첼 와이즈 역시 무모할 만큼 열정으로 가득한 인권운동가 테사를 매끄럽게 소화해내 생애 첫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나이로비의 가장 큰 슬럼가인 키베라에서 촬영되었다는 오프닝 씬을 비롯, 원작의 무대인 케냐 현지에서 촬영된 <콘스탄트 가드너>는 광활하고 아름답지만 빈곤과 질병으로 얼룩진 아프리카 대륙을 낭만적인 공간으로 윤색하는 대신 거칠고 사실적인 톤으로 담아놓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의 작업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 작곡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는 아프리카인의 음성을 담은 몽환적이면서도 애절한 음악으로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4월20일 개봉.
<콘스탄트 가드너> 100자평
빈민가의 실상을 폭로한 <시티 오브 갓>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다국적 제약회사가 저지르는 만행을, 맹렬한 기세로 보여주는 정치 스릴러. 단지 음모와 폭력을 고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실하고 자연을 사랑하던 남자가 정열적이고 정의로왔던 여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처절하게 그려진다. 잊혀진 땅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시티 오브 갓>은 가히 충격이었다. 기막힌 영상과 음악으로 제3세계인들의 아찔한 삶을 펼쳐보인 감독의 신공에 눈이 휘둥글해졌다. <콘스탄트 가드너> 역시 유려한 연출과 편집 위에 독특한 아프리카 풍광과 음악을 아우르며, 세계자본이 행하는 끔찍한 살육을 폭로한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기준이 느슨한 제3세계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며, 여기에 제1세계와 제3세계 정부의 공조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여타의 '음모영화'들과 다른 점은 제3세계인의 입장이 화면 곳곳에 삼투해 있다는 점과 의심스런 아내의 진심을 알아가며 그녀의 길-정의와 죽음의 길-을 따라 가는 남자의 순애보가 절절하다는 점이다. 감독은 아무래도 천재같다. -황진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