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씨네21>이 뽑은 이달의 단편 1. <1호선… 사람들…>
2006-03-28
글 : 이영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찌질한 인생을 바라보는 애정어린 눈

2004년 말. 권오성(30)씨는 여느 때처럼 1호선을 타고 부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옆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피신을 해온 것이다. 무슨 일인가 내다봤더니, 한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술을 드시기도 했고, 고성까지 내셨다. “그만두시라고 한마디 해야겠다”고 맘먹은 권씨. 문을 여는 순간, 그는 할아버지 얼굴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봤다. 동시에 마음속 짜증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신짜리 시나리오를 썼고, 몰래 찍은 사진과 함께 싸이월드에 올렸다. <1호선… 사람들…>의 ‘씨앗’이었다.

부화는 1년이 지난 뒤에 이뤄졌다.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에서 흑백무성영화 컨셉의 단편영화 사전제작 지원작을 공모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평소 1호선이 지나는 공간과 1호선을 타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년 전 일을 떠올렸다. “1호선과는 질긴 인연이다. 어렸을 때부터 종로, 오류동, 부천 등에서 살았으니까. 다른 호선이 KTX라면, 1호선은 완행열차 같은 분위기 아닌가. 뉴욕 변두리에서 잠깐 지낸 적이 있는데 거기 7호선이 딱 우리 1호선 분위기다. 껌 팔고 건전지 팔고. 뉴욕에 머물면서 언젠가 1호선 사람들에 대해 찍어보자고 맘먹기도 했고. 공모를 보니까 1년 전 만났던 할아버지 얼굴도 떠올라서 시나리오를 늘려 냈다.”

<1호선… 사람들…>은 종로의 공원을 돌아다니며 노인들에게 무료로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남자, 꼬깃한 종이에 프랑스어 단어를 적어다니며 프랑스 항공의 스튜어디스가 되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 여자, 그리고 지하철의 무료 신문을 주워서 생계를 연명하는 노인 등 “불행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1호선 인생들에 대한 애정어린 스케치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중심이었는데, 1호선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려면 인물들이 더 필요했다.” 오!재미동으로부터 받은 지원금 20만원으로는 모자라 누나를 협박하고 자비를 털어 60만원을 모았다고. “스탭은 달랑 2명이었다. 장비라곤 카메라와 삼각대가 전부였고. 조명이 없어서 애를 먹긴 했다. 지하철 안도 생각보다 어두웠다.”

말 못할 곤란이 그것뿐일까. 그는 탑골공원 촬영만 생각하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로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줄 알고 몇분의 할아버지들이 오셨다. 나야 영화찍기 위해서 일종의 거짓말을 한 셈인데. 죽음을 준비하는 진짜 할아버지들의 눈을 보니까 죄송스럽더라.” 대학 졸업 뒤 1년 동안 다니던 인터넷 회사를 때려치우고, 후배의 단편영화에 우연히 배우로 출연했던 그는 그동안 <B형 남자친구> 연출부와 몇몇 뮤직비디오 스탭으로 일하면서 <양복 입는 날> 등 2편의 단편을 만들었다. 올해 영화아카데미 프로듀서 과정에 입학한 그는 동기들 자랑을 늘어놓더니 “SF도 하고 싶고, 뮤지컬도 하고 싶고. 진지한 사회영화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프로듀서가 되기로 했다”면서 “원석을 발견해서 감독과 같이 세공하고 더 빛나는 보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2006 상상마당 단편영화사업

아마추어 영화작가 발굴을 위해 KT&G가 마련한 ‘2006 상상마당 단편영화’ 월 우수작이 발표됐다. 2월 한달 동안 KT&G 상상마당 온라인 상영관(www.sangsangmadang.com)에 출품된 53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결과, 권오성 감독의 <1호선… 사람들…>, 최준호 감독의 <핵(분열)가족>, 나광원 감독의 <여름이 끝나가다> 등 3편이 우수작으로 뽑혔다. 이들에게는 창작지원금 100만원이 각각 수여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