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앤서니 만과 샘 페킨파의 대표작 선보이는 웨스턴 특별전
2006-03-29
글 : 홍성남 (평론가)
웨스턴을 진화시킨 두 거장
<윈체스터 73>

1950년대에 할리우드의 웨스턴이 어떻게 진화했는가를 다룬 유명한 글에서 앙드레 바쟁은 앤서니 만을 가리켜 “소설적인 웨스턴을 만든 젊은 영화감독들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존재”라고 썼다. 그런데 자칫하다가는 이것이 마치 만이 고전적 웨스턴의 세계에 몸을 담았던 영화감독이었다는 식의 오해를 빚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부연하자면, 여기서 바쟁이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만의 웨스턴영화들이 부각시킨 인물들과 상황들의 심리적인 깊이였다. 어떤 면에서 만은 ‘서부의 사나이’를 과거와는 다른 시선으로 ‘재발견’해내면서 웨스턴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그는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심리적 음영을 드리우고 내면의 파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해냈다. 요컨대, 50년대에 만의 중요한 파트너가 된 제임스 스튜어트는 만의 웨스턴 세계로 진입해서는 점잖고 호감가는 인물이라는 예전의 이미지를 벗고 고뇌에 시달리며 폭력에 중독된 서부의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그처럼 만은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강박관념과 불안감과 어두운 기억을 가져다주어 그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포착해내려 했고 종종 그들을 가족간의 갈등 속으로 몰고 가면서 그 고통의 강도를 높이곤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고전기의 작가들, 예컨대 베르길리우스(장 뤽 고다르는 만이야말로 가장 베르길리우스적인 영화감독이라고 쓴 적이 있다)나 셰익스피어(죽기 직전에 만은 <리어왕>의 웨스턴 버전인 영화 <왕>을 만들려 했다)에 비견되는 시네아스트로 간주될 수 있었다. 아울러 만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도 그가 “시각적인 인간”(제임스 스튜어트), 비주얼 면에서는 바로크의 미학을 구현한 영화감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내외적 갈등을 겪는 인물들을 (특히 야외의) 공간 안에다가 정확하고 멋지게 배치할 줄 아는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의 ‘심리 웨스턴’ 혹은 ‘모던 웨스턴’이 얼마 뒤에 나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예기한다는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지적은 그르지 않아 보인다.

앤서니 만의 뒤를 이어 웨스턴 장르가 지날 궤적에 또 다른 중요한 ‘변형’을 가져다준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가 샘 페킨파이다. 페킨파는 “나는 말에 올라탄 남자들에 대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 ‘웨스턴’을 만든 적은 없다”고 말했는데, 이건 자기가 만든 영화들은 관습적인 형태의 웨스턴영화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언급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페킨파는 어쩌면 웨스턴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그가 바라본 ‘서부’란 과거 웨스턴영화 속의 서부와 달리 진보의 믿음이 이미 사라진 냉혹한 세계이다. 그곳에서는 원시적인 활력과 힘차게, 그러나 부패의 냄새를 풍기며 진격해오는 문명 사이에서 ‘이행’이 다소 잔혹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처럼 돈과 기계의 힘이 커져가는 바로 그곳에다가 페킨파는 한때 힘이 있었고, 꿈을 가졌으며, 자유를 누렸던 개인주의자들, 즉 서부의 무법자들을 데려다놓는다. “무법자들과 방랑자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관계의 종말>의 대사가 잘 알려주듯이 그들은 이제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는 페킨파의 웨스턴은, 한 시대의 종언에 대한 것이면서, 시대의 물결과 함께할 수 없는 부적응자들에 대한 것이고 또한 자신들의 명예(율)를 지키기 위한 과격하게 헛된 몸짓으로서 그들의 시대착오적인 영웅주의에 대한 것이 된다. 그건 사라져가는 장르로 사라져가는 시대를 끌어안으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의 영화들이 그토록 폭력적이면서도 로맨티시즘의 기운을 풍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래서일 것이다.

☞ 상영시간표 보기

앤서니 만 상영작 소개

윈체스터 73 Winchester ’73 1950년 흑백 92분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셜리 윈터스

<윈체스터 73>의 시사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제임스 스튜어트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고 한다. 로맨틱코미디에나 어울리는 유순한 남자가 웨스턴의 주인공이라는 게 잘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앤서니 만과의 파트너십의 시작을 알린 이 영화에서 스튜어트는 냉소적이면서 무자비한 서부의 사나이를 뛰어나게 체현해냈다. 만의 회상에 따르면, 말타기에는 이미 능숙했던 스튜어트는 총쏘는 연습에 매진하며 배역에 몰두했다고 한다. 스튜어트가 아버지의 살인범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인물로 나오는 이 영화는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오이디푸스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만 영화의 전형적 상황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막스 오퓔스의 <윤무>(1950)의 구조와 비슷하게 총의 순환에 따라 진행되는 내러티브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운명의 박차 The Naked Spur 1953년 컬러 91분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재닛 리

앤서니 만은 거의 모든 웨스턴영화가 왜 모뉴먼트 밸리와 같은, 미국 서부의 일부일 뿐인 사막에서만 촬영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반응으로서 그는 다른 풍경, 예컨대 산, 숲, 폭포 등의 풍경이 만든 웨스턴을 만들고 싶어했는데, <운명의 박차>는 만의 그런 소망을 충족시켜준 영화였다. 자연히 이것은 풍경을 뛰어나게 포착한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내면적인 분투에 대한 대응물이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현상금 사냥꾼 하워드 켐프와 5천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 살인범 반더그로트를 비롯해 서로 얽혀 있는 다섯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낸다. 필름누아르의 감성이 스며든 이 웨스턴은 그 인물들 사이에서 도덕적 중심이 어떻게 이동하는가를 긴장감의 주요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흥미를 배가한다.

틴 스타 The Tin Star 1957년 흑백 92분 출연 헨리 폰다, 앤서니 퍼킨스

헨리 폰다가 예전에 보안관이었다가 지금은 현상금 사냥꾼 일을 하는 냉소적인 인물로 나오는 <틴 스타>는 그의 강박관념보다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또 그만큼 전반적인 분위기에서도 억누름의 감정이 바래져 있다는 점에서 앤서니 만의 웨스턴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현상금을 받으러 마을에 들어온 현상금 사냥꾼 모그와 그곳에서 이제 막 보안관 자리를 물려받은 청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는다. 그렇게 ‘경험’과 ‘청춘’의 만남을 다루는 이 영화는 <하이 눈>(1952), <셰인>(1953)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를 예기하는 듯도 해 눈길을 끈다.

서부의 사나이 Man of the West 1958년 컬러 95분 출연 게리 쿠퍼, 줄리 런던

“앤서니 만의 <엘레나와 남자들>”이라는 표현을 쓰며 <서부의 사나이>를 극찬했던 장 뤽 고다르에 따르면, 이것은 극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링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로 귀환하게 되자 그가 완전히 떠나 있다고 생각했던 어두운 과거와, 그것에 기원을 둔 폭력에의 사악한 충동과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이 인물이 벌이는 운명과의 싸움을 그린 영화는 마치 그의 불타는 내면 속으로 들어간 듯 대단한 폭발적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순간들을 제공한다. 부상당한 두 남자가 총격을 벌이는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웨스턴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총격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아도 될 만하다. 조너선 로젠봄은 여기서 풍경과 건축, 사람들과 환경, 회화와 드라마, 이미지와 개념, 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이 모두 융합을 이룬다고 썼다.

샘 페킨파 상영작 소개

대평원 Ride the High Country 1962년 컬러 94분 출연 랜돌프 스콧, 조엘 매크리

샘 페킨파의 초기작인 <대평원>은 자신의 시대를 이미 지나쳐버린 남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오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과거에 보안관이었다가 지금은 노쇠해버린 스티브와 길은 그런 페킨파적 부적격자들이다. 영화는 그들이 금궤를 운반하는 일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구원과 고독’의 문제를 거만 떨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방식으로 다룬다. 확실히 <대평원>은 죽어가는 서부에 대한 씁쓸한 만가와도 같은 영화인데, 수많은 웨스턴영화에 출연했던 노배우 랜돌프 스콧과 조엘 매크리가 주연을 맡게 함으로써 센티멘털리즘의 기운을 좀더 강렬하게 피워올릴 수 있었다.

케이블 호그의 노래 The Ballad of Cable Hogue 1970년 컬러 121분 출연 제이슨 로바즈, 스텔라 스티븐스

마틴 스코시즈가 “잔혹한 시”라고 불렀던 대표작 <와일드 번치>를 만들고 난 뒤에 페킨파는 앞선 작품에서 보였던 ‘충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후속작인 <케이블 호그의 노래>는 여전히 서부의 종언에 대한 이야기, 서부의 마지막 모험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을 좀더 편안하고 유희적인 톤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영화다. 초죽음 상태가 되어 사막을 헤매다가 역마차가 지나가는 중간 지점에서 샘물을 발견하게 되는 남자와 이웃 마을의 매춘부의 이야기를 그린 <케이블 호그의 노래>는 페킨파의 가벼운 코미디적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페킨파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영화로 꼽는 이 영화를 두고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뉴 웨스턴의 눈부신 실례”라고 표현했다.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1973년 컬러 122분 출연 제임스 코번,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 나라는 나이를 먹고 있고 나도 그럴 작정이야”라고 자신이 원래 있던 영역에서 반대편으로 건너와 보안관이 된 팻이 말한다. 그는 예전의 동료이자 친구인 빌리를 쫓는다. 그가 법을 집행하는 것은 자신과 자기가 속했던 세계 자체를 배신하는 것이고 그게 그가 비극적 영웅이 되는 길이다. 페킨파에게 웨스턴으로서는 마지막 영화가 되는 <관계의 종말>에서 그는 팻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한번 미국이란 나라의 기반이 되었던 가치의 종말을 애도하고 그렇게 해서 현재를 재조명하려 했다. 그런데 이 야심찬 장르영화에 대한 영화사쪽의 반응은 아주 좋지 않아서 영화는 페킨파의 의도와 상관없이 재편집된 채로 개봉해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 “형편없는 웨스턴”이란 평을 들었던 이 영화에서 페킨파는 자기 이름을 빼고 싶어했다. 나중에 복원이 된 <관계의 종말>은 가장 풍요롭고 자극적인 웨스턴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