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일곤 감독 신작 <마법사들>에 출연한 정웅인
2006-03-31
글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뜻밖이었다.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에 정웅인이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그런 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무런 정보없이 <마법사들>의 포스터를 본 누군가라면, 정웅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마법사들>은 <두사부일체> 혹은 <투사부일체>와 같은 코미디영화라고 예단할지 모른다. 정웅인에게도 <마법사들>은 결과를 알 수 없는 모험이었다.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마그마처럼 들끓었지만” 그도 서울예대 동기인 장현성과 송일곤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96분의 살인적인 실험을 막상 몸으로 겪기 전까지, 그의 선택이 어떤 마법을 피워올릴지 전혀 몰랐다. 개봉을 앞둔 지금, 그는 <마법사들>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본인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하지만, <마법사들>은 배우 정웅인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립박수를 보낼 만한 성취를 보여준 것은 아닐지언정 그가 그토록 원하는 ‘새로운 시작’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오전에 결혼 발표를 한 탓에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구가 쇄도하던 3월21일 오후,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첫 인터뷰다.
=한이 맺혔다. (웃음) <두사부일체> 끝나고 <2424>로 첫 주연을 맡았는데 표지는 안 된다고 해서 그럼 싫다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 뒤로 <씨네21>쪽에서 전혀 연락이 없더라.

-우리도 표지 아니면 인터뷰 안 하겠구나 생각해서 차마 말을 못 전했다.
=잡지의 세계를 몰랐던 거지. 잡지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내가 장동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송강호나 설경구도 아닌데. 근데 비나 현빈이 표지에 나올 때는 좀 그렇더라. (웃음)

-서로 관계 개선을 좀 해야 하는데.
=마누라 될 친구한테 아까 문자 보냈다. 드디어 <씨네21>과 인터뷰 한다고.

-(웃음) 오늘 결혼 발표를 했다. 싱글로 살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아직도 그런 생각하나? 심각하네. 다른 기자들도 다 그러나. 나 혼자 세상 사는 것도 아니고 홀로 남으신 어머니한테 효도한다는 생각도 있고. 지난해 초에 그 친구를 만나서 <투사부일체> 촬영장에 데려갔는데, 다들 너 하기 나름이라며 결혼하라고 떠밀더라. 전에 안 좋은 일도 겪고, 변신하겠다고 나섰다고 망가지기도 하고. 그러다 그 친구 만났는데, <투사부일체> 만나서 흥행하고, <마법사들> 만나서 좋은 평가받고. 미신 같긴 하지만 그 친구 잡고 의지하면 앞으로도 쭉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았다.

-<마법사들> 출연은 의외였다. 장현성과 서울예대 연극과 89학번 동기라는 인연이 계기가 됐을 텐데. 송일곤 감독도 같은 학교 같은 학번이기도 하고.
=현성이랑은 대학 시절부터 술 친구다. 외상장부 있는 막걸리 집만 골라 다니며 술을 마셨다. 시사회에서 만나서도 술 마시곤 했는데, 현성이는 만날 너처럼 흥행되는 영화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난 말은 못했지만 현성이처럼 유명한 감독님들이랑 작업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달콤한 인생> 시사회에 갔다가 현성이 소개로 송일곤 감독님을 처음 만났는데, 얼마 뒤에 전화가 왔다. 전주영화제 나가는 영화인데 같이 하자고. <거미숲>이나 <깃>처럼 장편영화인 줄 알고서 드디어 왔구나 했는데. (웃음) 30분짜리 단편이라는 거다. 사실 실망했다. 물론 술에 넘어가서 출연하기로 했지만.

-<마법사들>은 전주영화제 3인3색에 출품됐지만, 송일곤 감독은 촬영 전부터 장편으로 찍을 마음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리딩하러 갔을 땐가. 감독 입장에선 현성이랑 나랑 ‘아다리’가 잘 맞는다고 봤나. 욕심이 났는지 한 시간 반짜리 장편 하나 만들자고 하는데 좋다고 했다. 원컷 원테이크라고 해서 에∼? 그랬지만.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카메라 감독이 어떻게 버티나. 배우들은 표정과 행동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스탭들은 숨어 있을 곳이라도 있나.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감독이 전주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꼬드겨서 한다고 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된 거다.

-<마법사들>을 보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배우들의 동선과 카메라의 동선이 겹치진 않을까 하고. 보는 사람이 촬영현장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감독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랬나? 첫 리허설 때만 하더라도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조그만 모니터로 봐도 화면이 흔들리는데 큰 스크린에 걸면 어떻겠나. 그런데 마지막 리허설 때 보니까 전과 달랐다. 느낌이 다르더라. 연습을 많이 한 거지, 촬영감독님이. 송일곤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내 입장에선 촬영감독님이 연말에 상이라도 하나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NG가 날 경우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했는데, 가장 문제가 된 장면이 뭐였나.
=처음에 자은이 카페 안으로 카메라를 유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우의 움직임과 크레인을 탄 카메라의 속도가 맞지 않아서 여러 번 NG가 났다. 크레인을 쓴 장면은 다 어려웠다.

-다른 영화와 달리 마음에 안 들어도 다시 찍자고 할 수 없었을 텐데.
=레몬 썰어야 하는 장면에서 손을 썰었다. 영화 봤더니 손 베인 걸 의식하는 게 보이더라. 그 다음 장면이 2층 올라가서 과거의 자은과 나누는 격정신인데, 계단 올라가면서도 계속 손가락이 신경 쓰이더라니까. 2층 장면은 카메라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만큼 공간이 협소한데다 구슬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설정도 있어서 더더욱 쉽지가 않았다. 결국 자은과의 감정신이 좋다고 해서 그 버전이 쓰이긴 했는데, 내 눈에는 정말 거슬린다. 애초 약속이 하나 틀어지더라도 잊고 가면 되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잘 안 되더라. 내가 감독도 아닌데 이거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찍어봤자 못 쓸 텐데 걱정도 들었고. 재성이라는 인물에 내가 그만큼 몰입을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촬영이 끝났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연극을 끝낸 것 같은 허탈함과 비슷했을 텐데.
=더이상 하기 싫었다. 더 찍자고 했으면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찬물에 빠지거나 어려운 다찌마와 리 찍고 나면 대개 감독님 표정을 기다리잖나. 그런 기분이었다. 매번 찍고 나서 송 감독님이 수고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그때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감독님 뭔 수고요? 마지막 수고요?’ 그랬다. 며칠 뒤에 다시 찍자고 할지 몰라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따뜻한 방에 가서 몸 녹이기 바빴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법사들>은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들이 많았을 것 같다. 저 장면 찍을 때 우리 그랬었지, 하는.
=많이 킥킥댄다. 스님과 현성이가 대화하는 장면에서 촬영감독님이 누가 가져다준 의자에 슬쩍 앉기도 하고, 다시 슬며시 일어나는 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카페 바깥 숲 장면 찍을 때 (이)승비 얼굴이 안 보이는 장면도 사실 다 NG인데 그냥 갔다. 배우들도 처음에는 나무에 테이프 붙여놓고 이 대사할 때 여기 서 있고, 저 대사 할 때 저기 서 있기로 했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할 때마다 배우들은 거울 앞에서 분장을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끊김없이 수시로 시간 이동을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장면들도 카메라 신경 쓰느라 긴장을 해야 했다. (웃음) 재성이라는 인물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명수랑 만나면 밝고, 자은과는 좀 진지하게 그러다 하영을 만나면 좀 오버도 하고. 상대를 통해서 보여지는 각각의 모습들이 모두 재성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거라고 봤고 그래서 장면 별로 모 아니면 도 하는 식의 극단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잘 안 된 것 같다.

-<써클>의 연쇄살인범 조명구 역할도 그렇고, <마법사들>의 재성도 그렇고 코믹한 이미지의 배우로 각인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다.
=<세친구> 막바지 촬영하다가 ‘아, 코미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웅인아, 니 표정 있잖아. 그거 한번만 더 하자’고 하시는데 ‘아 됐어요. 그냥 가요. 에이. 아까 그런 거 한번 했잖아’ 그러고 말았다. 그날 촬영 끝나고 술 마시면서 한계가 왔구나 싶더라. <세친구>도 반년만 더 하자고 했는데 거절했다. 그 일로 욕도 많이 먹었지만, 더 했다면 역효과만 더 났을 거다.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세친구> 때문에 CF도 찍었고, 차도 샀고 집도 샀다. 그런데 <세친구>의 시청률 37%와 <두사부일체>의 400만명이라는 스코어에 연연한다고 배우로서의 내 삶에 큰 플러스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이 얼굴로는 코미디밖에 안 되는 건가, 하고 고민하는 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이창동 감독님 영화 돌려보기도 했고. (웃음)

-해답을 얻었나.
=한번은 강한섭 교수님이 물으시더라. 아버지하면 최불암, 어머니는 김혜자. 웅인씨는 어떤 캐릭터를 구축했느냐고. 이웃집 재밌는 오빠라는 이미지를 만든 다음에 변신을 해도 늦지 않다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사실 그런 이미지를 구축한 차승원씨만 하더라도 <혈의 누>가 안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싶기도 하고.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모든 것에 감사하려고 한다. 가족도 꾸려야 하고. 곧 애도 생길 텐데, 분유값 생각하면 타협 안 할 수가 없지. 코믹한 부분에 가능성을 거는 감독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또 내 새로운 영역에 베팅을 한다면 또 감사해하고.

-한국에서 배우의 수명이 너무 짧기 때문에 변신에 대한 조바심도 그만큼 더 많은 것 같다.
=나라 전체가 빨리빨리 아닌가. 에이, 전에 했던 거랑 똑같네. 그런 이야기 들으면 변화하고 싶지 않겠나. 배우라면 A부터 Z까지 펼쳐 보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난 A부터 G까지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A랑 B를 한 다음에는 둘을 섞거나 그러는 수밖에 없다. 짬뽕밖에 못하는 거지.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선보일 수는 없다고 본다. 게다가 황정민처럼 실력도 있고, 운도 좋은 경우는 많지 않다.

-영화 데뷔작이 <리허설>이다. <미지왕>에도 단역 출연했고. 대학 졸업 뒤 연극을 하면서 영화, 방송 일을 겸했는데.
=조사를 너무 했네. <리허설>은 친한 친구랑 아르바이트로 한 거다. 야한 빤스 입고 나오는 단역 연극배우로 출연했다. 출연료로 300만원 받았는데, 그때 연극 몇달 해서 번 돈이 50만, 60만원이었으니까 꽤 짭짤했다. 방송 일은 아버지한테 밥값 받아 쓰는 내 모습에 짜증날 무렵, 학교 동기였던 (장)항준이가 손을 뻗쳐서 하게 된 거다.

-작은 역이지만 영화에 빠져든 계기가 된 작품이 있다면.
=<조용한 가족>. 나를 방송에 데뷔시킨 김병욱 PD가 도와달라고 해서 당시 그가 연출하던 시트콤에 카메오로 출연하곤 했는데, 마침 그 시트콤에 출연하던 최민식 선배를 캐스팅하려던 김지운 감독님 눈에 든 거다. 명필름에서 영화 들어간다고 나중에 연락와서 나갔는데, 학교 선배이기도 한 김 감독님이 맘에 드는 거 하나 고르라고 하더라. 그래서 (송)강호 형 역할을 찍었더니, 그냥 웃더라. 결정됐다면서, 그 밑에 거 고르라고. (웃음) 촬영하면서 당시 프라이드 몰고 다니던 강호 형이랑 자주 술 마시면서 어울리게 됐고, 영화 작업이라는 게 패밀리 개념이구나 처음 느꼈다. 그때 차가 없었는데 단역이지만 영화사에서 차 보내서 데리러 와주는 것도 고마웠고. 뒤이어 <반칙왕>까지 하게 되니까 한번 같이 하면 끝까지 가는구나 싶었고.

-<반칙왕> 개봉 당시 김지운 감독 대담을 보니까 편집 과정에서 많이 잘렸다고 하던데.
=그때는 많이 아쉬웠다. 힘없는 박봉 샐러리맨을 대변하는 역할이었으니까. 나중에 이미연 프로듀서가 고기 사주겠다고 불렀는데, 나갔더니 스틸 컷 담은 앨범을 주더라. 퉁 치자는 눈빛이었다. 이거 줄 테니까 어디 가서 뒷다마 까지 마, 하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도 일찍 세웠는데.
=연극 서클은 강제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좀 착하고 겁이 많다. 그때도 무서운 선배들 때문에 끌려들어간 거다. 술도 그때 잘 못 배웠다. 안산 곱창집에서 대접에다가 소주를 따르는데 술 마시고 사람이 풀어지니까 무서운 형들이 좋아보이더라. 이 형들 괜찮구나. 그래서 정을 붙였는데 첫 리딩하고 나서 주인공을 맡게 됐다. 공연하는데 떨리지도 않고, 여고생들도 많이 왔는데 박수도 엄청 받았고. 교무주임 선생이 무대 서는 놈이라고 두발 검사 때도 봐주기도 하고. 이 길이 내 길인가 싶었는데 지금까지 왔다.

-이 길이 아니구나 했던 적은 없나.
=왜 없겠나. 탤런트 시험 여러 번 떨어졌을 때도 그랬고. 한번은 면접까지 갔는데 전화가 와서 얼마 내면 붙여준다고 해서 욕하면서 싸우기까지 했다. 대학 졸업하고 뭐해야 하나 고민할 때도 그랬고.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길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들었다.
=근성 키우는 데 가난만한 게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집에 전화가 없었다. 아주 못살았다. 그때 신규 가입비가 30만원이었나. 전화기 사는 거 엄두도 못 내고. 학교에서 집 전화번호 적으라고 하는데 너무 창피해서 할머니 집 전화번호 적고 그랬다. 대학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로 주말마다 서울랜드에서 피에로 일을 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그러더라. 전하고 눈빛이 다르다고. 과거엔 빛이 났다고 하던데. (웃음)

-한 방송잡지와 한 인터뷰를 봤더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애틋하더라.
=잡일 하면서도 방송대 국문과 졸업하고 시도 즐겨 쓰셨던 독특한 분이셨다. 고물상을 하다가 그것도 잘 안 돼 염색하는 공단에서 다 쓰고 남은 드럼통을 가져다 팔곤 하셨다. 만날 얻어먹고 다니는 것도 그렇다면서 번번이 용돈을 내게 쥐어주셨고, 그 돈에는 언제나 염료가 묻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국희> 출연하기 직전에 돌아가셨는데, 배우는 무대에 섰을 때 배는 고파도 가장 빛난다면서 연극하라고 하시기도 했고.

-배우라는 끈을 놓치지 않았던 버팀목이 있었나.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알 파치노인가.
=알 파치노를 존경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 경우엔 주변의 잘된 배우들이었고, 그들이 내겐 자극이었다. 나랑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보다 한참 앞서 있는 배우들을 보면서 견뎠다. 현실이야 그렇지 않지만 가능성은 내가 더 많이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아도취로 버틴 셈이다. 남자 배우의 경우 40대 들어서도 잘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가보고 싶은 길이 있나.
=이거 꼭 좀 써달라.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한 영화사에서 홍 감독님한테 대신 연락해주겠다고 하더니 소식이 없다. (웃음) 만원 지하철이라고 해도 동승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미 고현정, 김승우 두 배우가 출연한다던데.
=승우 형이? 터닝포인트네. 정말 잘됐다. 로비도 참 잘했고. (웃음)

-늦었지만 혹시 아나. 지금이라도 로비를 하면 될지.
=그렇다고 승우 형 기회를 뺏을 수 있나. 이렇게 말했으니 단역이라도 하나 해볼 생각 있냐고 전화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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