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배종옥
2006-03-31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구름 너머 ‘첫사랑’ 닮은 구름 아래 ‘여신’

대학 1년, 생애 첫 미팅에서 만난 K와 끝내 연인이 되지 못하고 멀어졌다. 미완성이 부른 집착이었을까.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던 찢어진 내 작은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아니, 쟤가 왜 광고에 다 나오지? 언제 연예인이 된 거야.’ 착시의 대상이 배종옥이었다는 걸 드라마 <왕룽일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하여튼 그 때 내 눈에는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 헛것을 좇을 정도로 간절했던 K에 대한 허기를 <왕룽일가>의 배종옥을 보며 달랬고, 인기 급상승의 ‘쿠웨이트 박’에 비해 배종옥의 얼굴을 짧게 내보내는 연출자를 매회 저주했다. 급기야, 역시 배종옥이 출연했던 드라마 <도시인>을 볼 때는 드라마 프로듀서를 해야할까 보다,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그래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졸업 무렵, 한 방송사의 방송아카데미에다 아르바이트 수개월치를 갖다 바치고 연출 과정을 마쳤다). 이쯤 되니 배우 배종옥 자체의 매력에 점점 빠질밖에.

그녀의 온전한 첫 영화 주연작 <걸어서 하늘까지>가 극장에 걸리던 날, 달려갔다. 그것도 첫 미팅의 K를 데리고. 현실 속의 K와 재회한 터에 스크린 속의 연인까지 어둠 속에서 함께 하니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그 후 K와 첫 연애에 빠져들었으니 ‘오우~ 스크린 속 나의 여신이여, 땡큐’였다. 1년 뒤에 나온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의 주제가는 음치를 증명해주는 나의 오랜 애창곡이 됐다.

신문기자가 됐다. 배종옥과의 첫 대면은 케이비에스 분장실에서 이뤄졌다. 긴장과 설렘에 살떨리던 인터뷰 순간은 허무하게 끝났다. 여신의 응답 방식은 대단히 경제적이었고, 교감의 수위는 기사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헤어진 K는 누군가의 아내가 됐고, 여신은 구름 궁전에 머물 뿐인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질투는 나의 힘> 개봉 파티에서 여신을 다시 만났고, 여전히 경제적인 대화를 나눴다.

다시 시간이 흘러 <러브 토크> 마지막 촬영날, 여신이 내 앞에 툭 앉으며 아는 체를 했다. “<안녕, 형아> 때 인터뷰를 3주 동안 계속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 근데 기자들도 공부 좀 하고 와야하는 거 아니니? 어이 없는 질문 할 때면 없는 기운이 더 빠져. 그렇지 않니? <씨네21>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보자마자 특유의 말투와 억양으로 툭 반말을 던져주시는 그녀, 감동의 물결이었다. <러브 토크> 개봉 파티날, 누군가 눈 흘기며 면박을 줬다. “어째, 자리에 없다 싶으면 종옥 언니가 노래 부르고 있고, 그 뒤에서 열심히 백댄서하대. 번번이. 그렇게 좋아?”

K는 바다 건너 머나먼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고, 그녀와의 기억은 구름 저 너머로 사라져간다. 반면,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에 출연중인 배종옥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있음을 증명하며 여신 독재의 시대를 마무리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구름 너머에서 이따금 내 코앞으로 하강해 그 또한 나처럼 생사고락의 인격이라는 걸 알려주니 참으로 정겨운 여신이요, 인간미있는 여신이다. 스크린과 텔레비전에서 똑부러지는 그의 눈빛과 어투는 여전하지만 외부를 포옹하는 기운은 나의 눈을 따뜻하게 해준다. 현실과 스크린 사이에 벌어지는 교차의 묘미는 삶을 진정시켜주곤 한다. 영원한 건 없다는 새삼스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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