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수줍은 젊음, ‘바보’를 꿈꾸다, <청춘만화>의 이상우
2006-04-01
글 : 최하나
사진 : 이혜정

<청춘만화>의 영훈, 이상우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 얼굴이 친숙하다. ‘카스 CF에 나왔던 배우’라는 설명에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맞어, 걔!” 라고 선뜻 맞장구치기는 쉽지 않다. 집을 뛰쳐나와 낯선 스포츠 카에 올라타며 독립을 선언했던 반항아와 단정한 머리에 새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대학생의 모습이 잘 겹쳐지지 않는 탓이다. 이상우는 카스 광고 외에도 “나 이민 갈까봐”를 코믹하게 읖조렸던 백세주 광고 등으로 얼굴을 알렸지만, 이름 석자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는 아직 얻지 못했다. <드라마시티> 등 단막극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던 그는 <열여덟 스물아홉>에서 주인공 류수영의 청각장애인 동생 봉규 역을 맡으며 첫 고정출연을 따냈다. 스크린 경력이라곤 <내 청춘에게 고함>이 전부인 이상우에게 <청춘만화>는 사실상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신고식을 눈앞에 둔 새내기의 초조한 심정이 그런 것일까. 카메라 앞에 선 이상우는 오디션을 받기 위해 심사위원단을 마주한 파릇한 배우 지망생 같다.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움직여보라는 주문에도 겸연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포즈를 취한다.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죽을 만큼 힘들었다”며 진땀을 빼는 이상우는 인터뷰를 할 때도 수줍은 듯 말을 아낀다. “학교 다닐 때 너무 조용해서 있어도 안 보이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런 애였어요.” 본래 활발한 성격이던 그가 숫기 없는 아이가 된 것은 중학교 때 말을 더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을 더듬다보니까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예요. 말이 길어지면 실수하게 될까봐 점점 짧게 말하게 되고. 낯가림이 정말 심했어요.” 일단 대학에만 가면 마음껏 놀 수 있다는 말에 입시만을 목표로 했다는 그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고려대학교 식품생명공학과에 합격했고, 한 학기를 신나게 놀았다. 받아든 성적표는 예상보다 더 끔찍했다.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전공 수업에는 흥미를 붙일 수 없었고, 대학 생활은 겉돌기 시작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나던 즈음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소속사 대표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우연히 연기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이상우는 꼬박 한달을 고민했다. “너무 내 성격에 안 맞을 것 같아서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성격 좀 고쳐보자, 제대로 살아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의 이유가 역으로 결심의 계기가 된 셈이죠.”

“편안하게 연기하고 늘 여유가 있는” 박해일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상우는 경험을 쌓는 것을 최우선으로 친다. 경험이 생기면 그만큼의 자신감이 붙어서 현장에서의 긴장감을 녹여낼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의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그에게 노력의 방식은 늘 정공법이었다. 긴 호흡을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기에 커트 없이 두 시간을 연기해야 하는 연극에 뛰어들었고, 순발력이 부족했기에 하루하루가 강행군인 시트콤을 선택했다. “그냥 편하게 가는 것 보다는 베팅을 할 수 있는 걸 즐겨요. 나와 전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뛰어들어보는 거죠. 한번 깨져보자. 그리고 나 자신을 바꿔보자. 말하자면,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거죠.”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늘 듣는다는 이상우는 유독 순하고 착한 역할만을 맡았다. 여자친구 달래가 자신이 아닌 지환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양말 빨아줘”라며 서툰 투정을 부리는 <청춘만화>의 영훈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마냥 착하다. <열여덟 스물아홉>의 봉규는 늘 티격태격하는 형과 형수 사이를 중재하느라 바쁘고,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의 상우는 연상의 이혼녀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순정파다. “제가 아직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드러난 작품이 없잖아요. 이미지만 보고 결정하는데 착해 보이니까 그런 역이 돌아오는거죠.” 자신의 위치를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모든 역할에 목이 마르다”고 말하는 이상우는 욕심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수줍지 않다. “나중에 경험이 많이 쌓이면 ‘바보’ 연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원래 자신이 갖고 있는 부분을 표현하기가 더 쉽잖아요. 나한테도 바보 같은 면이 있고, 그 사람들이 가진 어떤 슬픔 같은 게 있기 때문에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싸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데 한없이 서투른 바보, 약점을 감추거나 피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매력적인 바보 이상우가 보여줄 진짜 바보를 기다린다.

장소협찬 홍대 SSAM, Rotta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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